일러스트=양진경

꽃도 아픈 사월에

뭇매처럼

쏟아지는

부신 빛이 아려서

지천으로 봄까치꽃

온몸이 다 퍼렇다

하늘도 아래로 내려

꽃에 입을 맞춘다

-김영란(1965- )

이 시는 김영란 시인이 이달 초에 펴낸 제주 4·3 시조집에 실려 있다. 시인은 “4·3 때 억울하게 숨져간 모든 4·3 영령께 이 시집을 바친다”고 새 시조집 발간의 소회를 밝혔다.

봄까치꽃은 봄의 전령사와 같은 들꽃이다. 시인은 이 꽃의 퍼런 멍 같은 빛깔을 보면서 아픈 역사를 떠올린다. 봄까치꽃이 지천으로 피었다는 것은 그만큼 4·3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혹은 희생당한 망자들이 수많은 봄까치꽃이 되어, 스스로 봄이 되어 소생하고 또 피어났다는 내용으로도 헤아릴 수 있다. 빛이 “뭇매처럼/ 쏟아”졌다는 시구는 가혹한 가해를 뜻하는 것으로, 하늘이 봄까치꽃에 입을 맞춘다는 시구는 깊은 상흔에 대한 위무 차원으로 읽힌다.

시인은 ‘불칸낭’이라는 제목의 시에서는 이렇게 썼다. “4·3 때 온 마을 불탄 선흘리에 가면// 불에 타도 죽지 않은 나무가 있지요// 숯덩이 가슴을 안고 지금도 살고 있죠.” 불칸낭은 불에 탄 나무를 일컫는 제주어다. 모든 불칸낭에 평화의 봄바람이 불어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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