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6년 4월 24일 나는 스페인의 어느 바람 부는 마을 풍차 앞에 서 있다. 어제 4월 23일 영국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스페인에서는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각각 영면(永眠)에 들어 나란히 인류 문학사, 문화사에서 영생(永生)을 얻었다.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극장과 그 주변에서 큰 굴곡 없이 살았다. 반면 세르반테스의 인생은 국제적 파란만장의 끝판왕이었다. 레판토 해전에 참전해 열병에 걸리고, 총상을 입어 왼손의 기능을 상실했다. 세금 징수원, 죄수, 군인, 포로, 노예 등등 그가 거쳐가야 했던 팔자는 ‘골 때린다’. ‘돈키호테’를 처음 구상한 것도 감옥 안이었다. BC 1000년경 고대 그리스 신화를 기원의 하나로 본다면 서양 문학(사실상 현재의 세계문학)의 역사는 대략 3000년쯤 된다. 20세기 가장 영향력이 있는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단테 이후 서양의 중심 작가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였으며 톨스토이, 괴테, 디킨스, 프루스트, 조이스도 이 둘에 못 미친다”고 평했다.
저렇듯 달랐던 둘이지만, 저 둘의 문학 안에는 인류 근대문학의 선구자적인 공통점이 있다. ‘돈키호테’가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면 셰익스피어는 희곡과 연극의 근대성을 확보했다. 제 삶에 스스로 이름을 부여하는 돈키호테처럼, 셰익스피어 비극 속 인물들에는 개인으로서 성격적 결함이 있고 그것은 능력과 낭패(狼狽)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예컨대 돈키호테와 햄릿은 신이 확정한 운명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환경에 휘둘린다. 돈키호테와 햄릿은 한 인간 안에 함께 서식한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정체성의 갈등과 충돌 때문에 일생 시달리다가 후회 속에서 죽어간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두 작가가 태어난 날은 달라도 같은 날 죽었다는 것은 재미와 의미 이전에, 묘하게 상징적이다. 풍차는 풍차일 뿐, 그 앞에 선 인간이라는 왜소하고 고독한 괴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