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전(Hereditary∙2018)'의 한 장면

“우연이란 것은 없다. 그것은 이름이 잘못 붙은 운명일 뿐이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ccident; it is fate misnamed).” 나폴레옹의 말이다. 겉으로 우연처럼 보이는 일도 모두 운명이라는 뜻이다. 영화 ‘유전(Hereditary∙2018∙사진)’은 우연의 연속으로 보이는 비극적 사건들이 결국 한 인물의 운명으로 판명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외할머니 장례식에 다녀온 피터(앨릭스 울프 분)는 그 후로 늘 멍하다. 수업 시간에도 멍하니 있다가 교사의 질문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다. 교사는 헤라클레스의 최후를 이야기하며 그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어떨지 묻는다. “헤라클레스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더 비극적일까? 아니면 덜 비극적일까?(So does that make it more tragic or less tragic that if he has a choice?)” 피터는 더 비극적이라고 답한다. “모든 게 필연이라면 캐릭터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는 얘기니까요(Because if it’s all just inevitable, then that means that the characters had no hope).”

그리고 뭔가 씐 듯이 더욱 비극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들은 애초에 희망이 없었어요. 모두 그저 끔찍하고 냉혹한 시스템에 있는 무기력한 장기 말에 불과하니까요(They never had hope because they’re all just like hopeless - they’re all like pawns in this horrible, hopeless machine).” 선택권이 있음에도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인다면 그보다 비극적인 일이 없다. 이 수업 시간에 한 피터의 답변은 마치 불길한 전조처럼 동생을 태우고 가는 자신의 차 꽁무니를 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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