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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승강기는 기다리는 줄이 늘 길어 보인다. 저 양반들이 다 탈 수 있을까. 몇 사람 없는 어느 날 냉큼 몸을 실어 봤다. 열 명도 수월치 않겠구나. 하찮은 호기심 좀 풀었다 싶었는데, 안내판이 새롭게 궁금증을 건드렸다.

‘승강기 갇힘 상황 발생 시 승객 행동 요령.’ 왜 ‘발생 시’를 굳이 썼을까. ‘승객’도 너무 당연하니 필요 없는데. ‘승강기에 갇혔을 때 이렇게 하세요’ 하면 얼른 다가오련만. 내용도 쓸데없는 말이 많았다. ‘1. 사고 발생 시 당황하지 않는다.’ 이미 제목에 담은 말 ‘사고 발생 시’를 또 썼다. ‘3. 낮은 자세를 취하고 침착하게 기다린다. 4. 구조대의 지시에 따라 기다린다.’ ‘낮은 자세로’ 하면 그만인 데다, 3에서 기다리라 했으니 4는 ‘지시에 따른다’ 하면 좋았을걸.

버릇처럼 트집 잡자니 언론인임이 찔렸다. 신문에 널린 저 군더더기들이 더 쑥스럽지 않은가. 특히 눈에 걸리는 말이 있다. ‘김 지사는 직접 병원을 찾아가 10억원 지원 방침을 밝혔다.’ 중간에 누구나 무엇을 끼우지 않고 바로 어떤 일을 할 때 쓰는 말이 ‘직접’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직접 협상할 뜻을 내비쳐’처럼. 한데 병원을 찾아갔다 함은 바로 그 사람 아니면 안 될 말. 이럴 때 ‘직접’은 군말이라는 뜻이다. ‘논란이 커지자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 서서 직접 사과했다’도 마찬가지. 기자회견장까지 나가 자기는 가만있고 누구를 시켜 사과할 수 없는 노릇. ‘직접’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도 손볼 데가 한둘이던가. ‘손수=남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 제 손으로 직접.’ ‘직접’을 빼 보자. 불필요함이 드러날뿐더러 풀이도 간략해진다(‘남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도 있으나 마나). ‘외식=집에서 직접 해 먹지 아니하고 밖에서 음식을 사 먹음.’ 그냥 ‘집에서 해 먹지’ 하면 그만이니 역시 ‘직접’은 괜한 말이다.

이런 흠을 저 승강기 문구가 본받지는 않았을까. 신문이고 사전이고 달라질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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