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내셔널

‘남부의 환대(Southern Hospitality)’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 남부 지방에 기반을 둔, 찾아오는 손님에게 친절함과 따듯함을 베푸는 정서와 문화다. “손님이 저 멀리 저택 정문에 발을 들이는 걸 보는 순간부터 접대 준비를 한다“는 표현처럼 남부 사람들은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 예의, 그리고 음식을 대접하는 일상에 익숙하다. 남부의 관광 부흥을 목적으로 만든 용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실한 건 남부에는 그 환대 현상이 있고, 그 내면에 어떤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환대는 태도와 정서, 규범의 문화지만 사용하는 언어와도 연관이 깊다. 상대적으로 도시가 밀집된 미국 동부와 달리 남부는 넓은 땅에 비해서 인구밀도가 낮은 편이다. 간혹 이방인이 찾아오면 반가워서, 또 다른 쪽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정보를 듣기 위해서 대화를 시작한다. 이런 스몰 토크(small talk)에는 친절함이 기본이다. 여기서 적개심을 보이거나 하면 서로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보통은 친절하게 맞이하고 잘 응대해서 길을 떠나게 해 준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어느 레스토랑에 갔을 때 일이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가족의 애들이 닮아 보여서 아내가 “얘들 쌍둥인가요?”라고 물어봤다. 애들 엄마는 웃으며 ”예스 맴(Yes, ma’am)”이라고 정중하게 대답한다. 루이지애나주의 어느 음식점에 갔을 때는 뉴욕에서 단체 여행을 온 듯한 고등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햄버거를 먹던 한 학생이 대화 중 욕을 하자 갑자기 모든 손님이 식사를 멈추고 일제히 그 학생을 쳐다보았다. “생큐”의 발음조차도 “쌔애-애앵-큐우-우”라고 억양을 넣어 진심을 표현하는 곳이 남부다. 여기서 상스러운 표현을 사용한다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런 언어 관습 때문에 남부를 여행하면 마치 시(詩)를 읽는 것 같은 경험을 한다. 멤피스에서 점심을 먹으러 들른 카페의 웨이트리스는 “어디서 왔냐?” 대신 “어떤 잔잔한 바람이 그대의 깃털을 이곳까지 날려 주었냐?”고 물어본다.

계층, 연령,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이곳 사람들은 매 순간, 본인이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으로 문장을 만들고 예쁜 단어들을 선택해서 대화하는 것 같다. 이런 대화의 기억과 음성은 온종일 머릿속에서 맴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남부 여행은 반대로 ‘돌아다니며 하는 독서’처럼 느껴진다. 커다란 땅을 다니며 문학의 마일리지를 쌓는 경험이다. 공손과 예의에 첨가된 이 언어의 마법은 일상에서 느끼는 지적 기분 좋음이다.

미국 남부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 언어 경험이다. 마이애미대학의 옛 동료 교수인 음악가 크리스는 순전히 이 예의와 대화를 경험하기 위해서 일 년에 한 번씩 짧게 남부를 여행한다.

언어와 더불어 남부의 흥미로운 문화가 바로 의상이다. 도시처럼 세련되지는 않을지언정 그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어 옷을 입는다. 느슨한 주말에 브런치를 먹으러 들르는 카페에서도 손님 대부분은 옷을 차려입는다. 흥미롭게도 남부의 환대가 손님의 옷차림과 관련된 점이다. 대접받으려면 상대방에게 지켜야 하는 예의가 있다. 언어와 더불어 옷차림이 대표적이다. 헌옷은 괜찮지만 막 입으면 안 된다. 더 좋은 옷이 없다면 괜찮지만 좀 더 나은 옷이 있다면 그걸 입는 것이 좋다.

환대를 뜻하는 단어 ‘호스피탤리티’는 레스토랑, 호텔 등의 산업을 일컫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 분야에서도 당연히 손님에 따라서 대접이 다르다. 막 입고 막말을 하는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고 싶은 주인은 없다. 남부에 갈 때는 양복 상의 한 벌 정도는 챙겨 가는 게 좋다. 그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려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또는 그저 누군가를 만날 때도 꼭 필요하다. 나도 여러분의 격식과 예의를 존중하고, 나에게 베풀어줄 환대를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을 비치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 대부분이 남부의 주다. 남북전쟁 패배로 가난하게 살았지만 남부는 과거 영화로운 시기의 귀족 예절과 공손한 언어 표현을 잃지 않았다. 가난해도 지킬 수 있는 것이 언어다. 이건 남부의 영혼이자 자존심이다. 언어와 단정한 옷차림, 환대와 예의는 삶의 어떠한 본질적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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