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울산에서 예정된 산둥 타이산과 울산 HD의 아시아축구연맹 경기는 시작 휘슬이 울리기 두 시간 전에 취소됐다. 산둥 측이 “선수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돌연 기권했기 때문이다. 집단 식중독에 걸린 것도 아닌데 경기 직전에 단체로 건강 이상이라는 것이다. 향후 클럽 대항전 출전 금지와 벌금 등 중징계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산둥 구단이 이랬던 건 11일 중국에서 열린 광주 FC와 경기에서 산둥 일부 팬이 전두환 전 대통령 사진을 꺼내 들고 광주 선수들을 자극한 사건 때문이다. 중국 매체는 울산전 포기 이유로 ‘경기 중 통제할 수 없는 결과’를 우려했다고 전했다. ‘전두환 사진’에 분노하는 한국 민심에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산둥 구단은 중국 국영기업 소유인 만큼 공산당이 맘대로 할 수 있다.
‘전랑(늑대) 외교’를 내세우던 중국이라면 사드 배치 때처럼 한국의 반발은 힘으로 누르려 했을 것이다. 최근 국내 일부의 ‘혐중 자극’에 대해서도 우려 정도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대외 정책 설계자는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장쩌민·후진타오에 이어 시진핑까지 3대 연속으로 중국 전략을 짜고 있다. 왕후닝은 올 초 전국통일전선부장 회의에서 “해외 통전(통일전선) 공작으로 인심을 쟁취하라”고 지시했다. 공산당은 불리할 때면 늘 통일전선 전술을 쓴다. 동조 세력을 확보해 주적과 싸우는 것이다. 국민당과 내전 때 소자본가와 지식인을 끌어들인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 시진핑의 주적은 트럼프일 것이다. 트럼프가 중국을 포위하기 전에 ‘주변국 인심’을 최대한 얻을 필요가 있다.
얼마전 중국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막았던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기로 했다.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인근에 설치했던 부표도 스스로 철거했다. 한국에 대해선 무비자 조치를 먼저 하더니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도 곧 해제할 것이라고 한다. 이달 말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가 예정돼 있다.
트럼프가 예측 불가라지만 중국 견제만큼은 1기 때부터 변함이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칠게 끝내려는 것도, 가자지구 주민을 강제 이주시켜서라도 중동 분쟁을 봉합하려는 것도 미국 힘의 분산을 막아 중국에 집중하려는 사전 정지 작업일 수 있다. 트럼프는 형제국 같은 캐나다와 유럽의 나토는 험하게 다루면서도 한·일에 대해선 아직 별말이 없다. 오히려 한국에는 중국군에 밀리는 미 군함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푸틴과 가까워지고 한·일이 동맹으로 있으면 중국을 지정학적으로 에워쌀 수 있다.
지금 트럼프의 폭주에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세계 경찰이 보호비 갈취하는 마피아 두목이 됐다”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정은과 ‘북핵 쇼’, 방위비 청구서, 주한 미군과 한미 연합 훈련 등에 대한 걱정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상대적으로 시진핑이 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다. 왕후닝 전략대로 한·일 민심을 쟁취하려는 통전 공작도 본격화할 것이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여론조사상 민주당이 유리하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중국에 ‘셰셰’하면서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표현했던 사람이다.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자 “제2의 태평양 전쟁”이라고도 했다. 미국은 북중 견제를 위해 한미일 군사 협력을 중시하는데 한미일 해상 훈련을 두고 “자위대 한반도 진입” “극단적 친일”이라며 반대했었다. 요즘 한미, 한일 관계를 중시하는 말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말을 뒤집은 사례는 셀 수도 없다. 트럼프의 폭력과 시진핑의 미소가 교차할 경우 미중이 싸우기도 전에 우리 내분부터 격화하지 않을 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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