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비상 계엄 사태 수사 과정에서 어이없다고 느꼈던 장면이 있다.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한 다음 날 오동운 공수처장의 출근길 모습이었다. 수사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그런 엄중한 순간엔 표정도 관리한다. 수사에 임하는 자세가 그 표정을 통해 국민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 처장은 마중 나온 공수처 관계자를 만나 활짝 웃으며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판사 출신이라 수사를 모를 수는 있다. 그래도 그 함박웃음은 지금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대통령 체포를 ‘수사 성공’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포도 조사를 위한 절차일 뿐이다. 조사가 목적이라면 다른 대안을 검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수처는 조사 방법도 조율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세 번 소환 통보하고 불응하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국회의원 수사도 이렇게는 안 한다. 조사보다는 대통령을 관저에서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가 큰 것이었다. 그 결과 윤 대통령의 진술 거부로 제대로 된 조서 한 장 남기지 못했다. 수사 아마추어가 ‘체포 쇼’만 벌인 것이다.
수사권 논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현행법상 내란죄 수사권은 경찰만 갖고 있다. 그런데도 수사에 뛰어든 공수처는 ‘중복 수사 이첩권’을 활용해 검찰과 경찰이 수사하던 사건까지 넘겨받았다. 조직 존재감을 키우려는 야심 때문에 무리수를 둔 것이다. 법원이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것도 그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일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대 25명까지 둘 수 있는 공수처 검사는 현재 14명이다. 규모는 작지만 권한은 막강하다.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엔 판사·검사는 물론 대통령·장관·국회의원·장성급 장교 등이 포함돼 있고, 수사 범위엔 부패 범죄와 무관한 직권남용·직무유기·위증 등이 망라돼 있다. 사건이 중복되면 검찰과 경찰에 사건 이첩을 요구할 수 있고, 다른 행정기관에서 파견받을 수 있는 정원 제한 규정도 없다. 필요에 따라 경찰은 물론 국세청·금감원 직원 등을 파견받아 순식간에 ‘괴물’ 수사기관으로 변신할 수 있다.
통제도 받지 않는다. 검찰만 해도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인사를 통해 간접 통제를 받지만 공수처장은 대통령이 임명만 하면 아무 통제도 받지 않는다. 공수처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반면 수사 능력은 여전히 물음표다. 공수처 검사의 상당수는 수사 경험 없는 변호사 출신이다. 민주당이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검찰 출신을 배제하려고 공수처 검사 자격 요건에서 ‘수사 경력’을 삭제한 탓이다. 이 때문에 아직도 공수처 검사들을 스피치 학원에 보내겠다며 관련 예산을 청구하는 희극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 2021년 설립 이래 연평균 200억원대 예산을 썼지만 직접 기소한 사건은 5건밖에 되지 않고 그중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1건에 불과하다. 이런 수사기관이 중요 수사를 지휘하면 어떤 아찔한 상황이 올지 모른다.
이 상태로 공수처를 방치해선 안 된다. 법조계 일각에선 폐지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공수처는 문재인 정권이 검찰 개혁의 상징처럼 출범시킨 것이다. 민주당이 폐지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주당 의원들은 오히려 공수처 권한을 확대하자고 한다. 무책임한 일이다. 공수처는 계엄 수사에서 바닥을 다 보여줬다. 폐지가 어렵다면 기능을 줄여야 한다. 공수처는 애초 검찰의 제 식구 봐주기 수사를 막자는 데서 출발했다. 그 취지대로 수사 대상을 검사·판사·고위 경찰관 비리로 좁히고, 이름도 ‘법조비리수사처’로 바꾸는 게 맞다고 본다. 그것이 차선책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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