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사태 초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 정부는 1년 이상 지속된 의정 갈등 사태에서 판판이 졌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에게 대학·수련병원으로 돌아오라고 했지만,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의대생들이 3월 중으로 돌아오면 2026학년도 의대 증원을 ‘0명’으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2027학년도부터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에서 의대 정원을 정하기로 했다. 환자단체들은 “그동안 불편을 참고 기다린 국민을 기만한 조치”라고 분노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2025학년도 의대 정원 1500명 늘리려고 이런 고생을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래도 교육부는 “계속 평행선을 달린다고 의정 갈등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욕을 먹더라도 총대를 메야 한다”며 강행했다.
지난 21일부터 주요 의대 등록 마감이 시작됐다. 정부가 사실상 ‘백기투항’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의대생은 절반 정도만 돌아왔다. 정부와 대학은 “이번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학칙대로 유급·제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대마불사’ 태도다. 이러다 보니 국민 여론도 급속하게 돌아서고 있다. 설사 정부 정책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나오는 건 해도 너무하다는 것이다.
‘알빠노’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쓰는 말로 ‘내 알바 아니다’라는 뜻이다. 최근 의대생들을 만난 의대 교수들은 이 단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무너지고, 의료 교육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금씩 양보하자고 해도 의대생은 여전히 ‘알빠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원로 의사들은 “의료인은 ‘나의 최대 이익’이 아니라 ‘환자의 최대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그게 이 직업의 본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별다른 반향이 없다. 의대 교수들마저 “앞으론 의대 입시에 인성 시험을 강화해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최근 일부 의대생들과 면담한 한 대학 총장은 “앞으로 의사 사위나 며느리는 안 보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똑똑한 의대생이 자기 나이의 세 곱절인 대학 총장을 대하는 태도에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취지다.
의대생이 복귀 조건으로 꼽는 필수의료 패키지 취소 등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 많다. 의사 면허를 따도 일정 기간 수련을 하지 않으면 단독으로 진료를 보지 못하게 하는 ‘개원 면허 제도’ 도입 등을 문제 삼고 있지만, 정부는 최근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물러섰다. 실제로는 ‘비급여 진료 제한’ 등 미래 소득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반발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문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정부 책임이 크다. 처음부터 의대 정원의 66%를 한꺼번에 늘리겠다는 무리수를 뒀다.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지키지도 못할 말만 앞세우며 사태를 키웠다. 교육부는 집단 휴학은 절대 안 된다며 휴학을 승인한 서울대에 감사까지 진행했다. 그러다 막판에 대규모 유급 사태를 막기 위해, 휴학을 승인해주는 모양새를 취했다. 전공의들에게도 복귀 명령을 내렸다가 거둬들였다. 전공의들을 모집할 때도 매번 ‘이번에 한해서만’ 병역 수련 특례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번엔 진짜 행동에 나서겠다”고 외쳐도 아무도 믿지 않는 ‘양치기 정부’가 된 것이다.
정부 안팎에선 말뿐 아니라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압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정부·대학은 대규모 유급·제적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의대 편입 확대 등 ‘플랜B’까지 만들었다. 양치기 소년 우화가 결국 비극으로 끝났듯, 만약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면 한국 의대 교육과 의료 시스템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의대생도 교육의 장에 돌아와 투쟁이든 협상이든 이어가야 한다. 의대 교육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딱 일주일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