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거스타의 바람은 조용했다. 매킬로이가 18홀 마지막 퍼트를 놓쳤을 때,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프로라면 십중팔구 성공시킨다는 1.5m 거리. 넣으면 우승. 동시에 ‘커리어 그랜드슬램’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공은 홀컵 가장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연장전으로 끌려가던 순간, 그의 눈빛은 흔들렸다. 아마 ‘또 이대로 무너지는 건가…’ 그런 불안감이 담겼을 것이다. 여러 번 그런 식으로 주저앉은 과거 기억이 떠올랐을지 모른다. ‘더 고난을 겪어야 진정한 영웅으로 태어나는 걸까….’ 하지만 그 절망감의 늪에서 그는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수렁의 끝자락에서 걸어 나와 마침내 ‘녹색 재킷(마스터스 챔피언에게 입히는 옷)’을 두 어깨에 걸쳤다.

매킬로이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여정. 왼쪽 맨 위가 마스터스. (그 옆부터 시계 방향으로)PGA챔피언십, US오픈, 디오픈. /로이터 연합뉴스
매킬로이의 커리어 그랜드슬램 여정. 왼쪽 맨 위가 마스터스. (그 옆부터 시계 방향으로)PGA챔피언십, US오픈, 디오픈. /로이터 연합뉴스

‘커리어 그랜드슬램.’ 4대 메이저 대회(마스터스, US오픈, PGA챔피언십, 디오픈)를 정복하는 이가 받는 영광스러운 칭호다. 그 명예 아래 선 골프 선수는 단 여섯 명. 매킬로이는 그중 다섯 명을 뒤쫓으며 젊은 시절 조각 셋을 22세부터 25세 사이 맞췄다. 남은 건 마스터스. 시간 문제일 뿐이라 여겼다.

그러나 마지막 퍼즐은 생각보다 멀었다. 우즈는 단 1년, 호건은 2년, 니클라우스가 3년 만에 그 빈자리를 메웠지만 매킬로이는 11년을 기다려야 했다. 36세에 마지막 벽을 넘었을 때, 그의 내면엔 자신과 싸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의심이 끊임없이 밀려왔습니다.” 그의 서사는 필 미켈슨의 불운과 겹친다. 미켈슨은 메이저 우승을 6번 했지만, 유독 US오픈과 인연이 없었다. US오픈에서만 여섯 번 2위에 머물렀다.

골프는 본래 실수의 경기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완벽한 샷은 신기루에 가깝다. 정말 중요한 건 실수 이후 자세다. 골프가 인생과 닮았다면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잘 치는 것보다 더 숭고한 건 잘 버텨내는 것이다. 선수는 18홀을 도는 내내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self-talk)한다. 눈앞 벙커보다 두려운 건 마음속 소음이다. ‘멘털’이라 불리는 내면의 근육은, 위기의 순간 실체를 드러낸다. 운명의 신은 바로 그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기다림은 골프의 핵심이다. 그린 위에서, 벙커 옆에서, 클럽하우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불안의 싹은 커진다. 앞 조가 환상적 샷을 터뜨릴 때, 순위판이 출렁일 때, 불안은 상상 속에 스며들고 그 상상이 현실로 바뀌는 건, 단 한 번 어이없는 실수면 족하다. 멘털은 그때 자아를 붙잡는 마지막 실끈이다. 그랜드슬램에 트로피 하나만을 남겨둔 여자 골프 선수 리디아 고는 말했다. “전엔 실수가 나올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빨리 잊고 다음에 집중하려고 해요.”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그 순간, 회복 탄력성이 깜빡이기 시작한다.

마스터스 시상식에서 감격에 겨워 하는 매킬로이. 그럴만 했다. /게티이미지

골프는 매 샷이 하나의 독립된 사건이다. 이전 샷이 남긴 감정의 흔적에 매이지 않고, 다음 샷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각오. 그때 실패가 디딤돌이 된다. 매킬로이는 마스터스 직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위험을 피하려는 존재예요. 마음이 다치기 싫어 사랑에 빠지는 걸 주저하기도 하죠. 저 역시 골프장에서 그런 식으로 살아왔어요.” 패배를 외면한 채 대회에 나서는 순간, 뇌는 자동으로 불안을 감지한다. 고통을 숨길 게 아니라 인정하고 직면할 수 있는 당당함이 필요하다. 골프만 그런 건 물론 아니다.

매킬로이는 “수년간 세계 최고 무대에서 정상에 오를 기회를 잡았지만, 번번이 좌초했다. 그래도 인생은 계속되는 거라 털어버리고 일어섰다”고 말했다. 매킬로이는 지난 10년간 메이저 대회에서 가장 많이 10위 안에 들고도 우승하지 못한 선수였다. 그가 새로 깨우친 게 있다면 프로 선수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이며 삶에서 뭐가 더 중요한지 잊지 않으려 다짐하는 마음가짐이다. 잠시 실패로 얼룩질 지라도 인생은 길고 충분히 아름답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매킬로이와 아내 에리카 스톨, 딸 포피. 최근 매킬로이가 달라진 거라면 가족이 삶에서 최우선 순위로 올라왔다는 점이다. /UPI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