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1월에 충청북도 제천시 명동 194-2에 자리한 옛 중앙곡자 건물이 철거될 예정이다. 곡자(曲子)는 누룩이라는 뜻이며, 중앙곡자는 막걸리 만들 때 쓰는 누룩을 만들던 누룩 공장이었다. 금정산성누룩마을처럼 조선시대부터 내려온다고 하는 누룩 제조 지역도 있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누룩 공장은 20세기에 직접적인 기원을 둔다. 1925년에는 한반도 전역에 3만6273곳이 있었다고 하는 누룩 공장은 그 후로 급격히 줄어들었고, 광복과 6·25를 거치며 폐업과 창업이 잇따른 누룩 공장 가운데 현재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은 진주곡자, 송학곡자, 금정산성누룩 정도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곡자라는 단어를 상호에 넣은 누룩 공장은 그 존재만으로도 귀중한 근현대 한국의 유산이다.
제천시의 중앙곡자는 1962년에 흙벽돌·목조·시멘트를 혼합한 양식으로 지은 건물에서 2011년까지 영업했다. 그 후 제천시의 근대 건축 유산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결국 이번 달에 철거하고 승용차 45대가 들어가는 공영 주차장을 만들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듣고 지난달에 급히 제천을 찾아갔다. 실제로 가서 보니, 근대 건축물이 별로 없는 제천시에서는 보기 드물게 잘 보전된 건물이었다. 출판사 뿌리깊은나무에서 간행한 ‘한국의 발견’ 시리즈 가운데 충청북도 제천시 편을 보면, 오랜 역사에 비해 제천시에는 역사 흔적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나온다. 1980년대에 이런 평가를 받은 바 있는 제천시에서, 고풍스러운 중앙곡자 건물은 한층 더 희귀한 역사적 유산이다. 현대 초기에 창업한 곡자 공장 가운데는 원형이 잘 남아있는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 전국적으로도 가치를 지닌다.
중앙곡자 건물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건 세 가지다. 첫째, 공영 주차장이 늘어나는 것은, 나같이 면허가 없는 사람에겐 공공(公共)이 세금으로 운전자들에게만 특혜를 베푸는 것이다. 더욱이 공공이 주차장을 운영하면 민간이 주차장 사업에 뛰어들 이점이 없어져서 주차난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둘째, 자율주행이 5~10년 사이에 활발해지면 주요 장소 가까이에 주차장이 있을 필요가 약해진다. 지난 10월 29일에 손정의(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은 강연에서, 과거의 주요한 이동 수단이던 승마가 자동차의 등장 이후에 귀족적 취미로 전락한 것처럼, 사람이 하는 운전도 자율주행의 본격적 도입 이후에는 사치스러운 취미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가 되면 불과 십여 년을 내다보지 못하고 지역의 중요한 유산을 주차장과 바꾸어버린 것을 후회할 것이다. 지난 10~20년 사이에 주차장을 만들겠다고 철거한 근현대의 귀중한 건물과 마을이 너무나도 많다.
셋째, 이런 독특한 역사와 형식을 갖춘 건물을 살려서 제천시립 막걸리 박물관을 만들거나 민간 사업자에게 임대해서 막걸리 바로 활용하면 어땠을까? 코레일 충북지역본부도 폐지하기로 정해진 상황에, 지역 재생 거점이자 관광 자원으로서 중앙곡자 건물이 앵커 스토어가 될 수 있었을 터이다. 베리나인 같은 국산 위스키 성지 군산에서는 지역의 역사성을 살린 청주 바가 잇달아 개업하고 있다. 제천에는 60년 역사를 지닌 중앙곡자 건물이 원형대로 남아 있으니 상징성이 더욱 클 터이다.
이미 철거가 확정된 상태이니 중앙곡자 건물은 아마 보존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쓴 이유는 뒤늦게 중앙곡자 건물 보존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앙곡자 건물과 같은 현대 한국의 훌륭한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음을 후세에 전하고, 비슷한 사례가 다른 지역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