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4일 최순실 국정 농단 및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온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징역 20년을 확정했다. 2017년 4월 구속 기소된 지 3년 9개월 만에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모든 재판이 끝난 것이다. 앞서 유죄가 확정된 새누리당 공천 개입 사건 형량(2년)까지 더하면 그의 총 형량은 22년이다. 그가 이미 복역한 기간(3년 10개월)을 빼도 가석방이나 특별사면이 없다면 그는 2039년 87세 나이에 출소하게 된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이날 두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한 작년 7월 파기환송심 선고를 그대로 확정했다. 특검은 파기환송심이 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분을 무죄 선고한 것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상고를 했지만 대법원은 “문제없다”며 기각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날 형 확정으로 박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 요건을 갖추게 되면서 이미 형이 확정된 이명박 전 대통령과 함께 사면 논의가 재점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중순으로 예정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직접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문제를 언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국민의 촛불 혁명, 국회의 탄핵에 이어 법원의 사법적 판단으로 국정 농단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라며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과 발전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대법원 선고가 나오자마자 사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곧 있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들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사면에 관한 입장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에 따르면, 옥중의 박 전 대통령은 사면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사면 얘기를 꺼냈다가 다시 사과를 전제로 한 ‘조건부 사면’ 얘기로 입장을 뒤집은 것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 재판에 대해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이란 입장을 밝혔고, 지난 3년 10개월 동안 침묵으로 투쟁해왔다”면서 “지금껏 사면에 대해 듣고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언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은 갈수록 건강이 악화돼 매주 두 차례씩 서울성모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작년 9월 어깨 수술을 받기 위해 구치소를 나와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78일 만인 12월 재수감됐다. 어깨 통증이 최근엔 목과 허리까지 번졌다고 했다. 면회를 왔던 인사에게 “기력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청원 전 의원은 “병원 치료가 절실해 여권 핵심 관계자를 통해 형 집행정지를 부탁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젠 인도적 측면에서라도 대통령이 사면을 결단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친박계 인사도 “자주 우시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억울한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최측근과의 만남도 자제하며 고립 상태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한 친박계 인사는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 정도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박 전 대통령과 접견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사과를 거듭 요구했다. 이낙연 대표는“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깊은 상처를 헤아리며 진솔하게 사과해야 옳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사면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