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주최한 대선후보 토론회가 열린 서울 KBS 스튜디오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오른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photo 국회사진기자단

지난 2월 8일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는 자기 후보가 마음에 안 드는데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을 수는 없지 않냐며 인질이 된 기분으로 찍으려 하고, 국민의힘 지지자도 그렇다.”

사실 ‘인질’이란 단어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 후보, 두 사람의 관계에 더 들어맞는 단어다. 둘은 서로를 옭아매고 있다. 서로가 상대방에게 인질이자 상대를 붙잡고 있는 인질범이다. 둘은 ‘단일화’라는 방정식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지만 상대방이 판을 깨뜨리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풀어야 한다.

윤 후보 입장에서 한번 보자.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다. 자강론(自强論)과 단일화다. “상대 후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던 윤 후보의 스탠스는 선거를 한 달 앞둔 시점부터 변했다. 단일화에 직접 메시지를 내기 시작했다. “단일화를 한다면 바깥에 공개하고 진행할 게 아니라, 안 후보와 나 사이에서 전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2월 7일 한국일보), “서로 신뢰하고 정권교체라는 방향이 맞으면 단 10분 안에도, 커피 한잔 마시면서도 끝낼 수 있는 것 아닌가”(2월 9일 중앙일보) 등등의 발언은 그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단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런 발언과 발맞춰 후보 단일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확률 높은 승부수를 놔두고 방치하는 건 직무유기니까. 이준석 대표와 윤 후보의 갈등이 봉합된 이후 단일화에 관한 질문은 이 대표가 답해왔다. 이제는 이 문제를 두고 캠프가 시동을 걸고 있다.” 선대본에 참여 중인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의 말이다. 단일화를 물으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라며 전략적 무용론을 강조하던 이 대표 발언의 효용이 끝나가고 있다는 얘기다.

공격적 윤석열, 벗어나려는 안철수

단일화라는 소재로 윤 후보와 안 후보의 발언은 교차하고 있다. 윤 후보는 단일화라는 화두가 등장하면서부터 공세적으로 변했다. 최근 그의 인터뷰에는 몇 가지 힌트가 있다. 일단 ‘나’라는 주어다. “안 후보와 ‘나’ 사이에서 전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라고 말하며 이 문제를 자신의 곁으로 가지고 왔다. 그동안 당대표가 말하던 단일화의 결정권 주체도 자신이라고 확인시켰다. “커피 한잔 마시면서도 끝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자기 마음먹기 나름의 문제이고 언제든 가능하다는 암시를 주며 단일화라는 소재의 꼬리를 끊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통 큰 모습을 보이며 우위에 서려는 느낌이다.

윤 후보가 인터뷰를 냈던 지난 2월 7일 측근의 입을 통해서 나온 또 하나의 발언이 있었다. 선거대책본부 핵심 관계자가 “단일화에서 여론조사 방식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담판 이외에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두 후보의 급이 다르다는 얘기인데 두 발언이 한날 동시에 나온 걸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절묘하다. 단일화에서 안 후보는 종속변수라고 보는 시각이 반영된 발언이다. 사퇴하라는 종용으로 비칠 법했다. 단일화를 두고 양 후보 진영이 접촉을 해오고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정말 긴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면 측근의 입을 통해서 “여론조사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 그래서인지 윤 후보가 단일화를 말하고는 있지만 막상 단일화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윤 후보 선대본 관계자도 “우리나 저쪽이나 단일화를 위한 실무단도 꾸린 적이 없는데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대응은 즉각적이다. 한국일보 인터뷰에는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인터뷰에는 “그 자체가 일방적인 생각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두루뭉술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답한다. 안 후보 캠프 관계자는 “안 후보의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우리 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들이다. 단순히 단일화 프레임에 우리를 묶어두는 전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 후보의 스타일은 꼼꼼히 체크하고 논리적인 선후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계산적이라고 말하지만 이과 출신 CEO라는 전직을 고려할 때 본인 특유의 정치 스타일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전격적’ ‘10분’이라는 단어는 전형적인 윤 후보 중심의 단어다. 단일화라는 소재를 윤 후보가 활용하려고 하자 안 후보는 그 구심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모양새다.

과거 단일화와 다른 전제조건들

단일화의 반대 지점에는 자강론이 있다. 자강론은 원래 이준석 대표의 시그니처 전략이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전략적 성공을 경험한 뒤 최연소 당대표가 된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려고 한다. 그 중심에는 세대포위론을 중심으로 하는 자강론이 있다. 이 대표가 단일화를 단칼에 자르는 것을 두고 안 후보에 대한 사감(私感)과 연관 짓는 의견이 있지만 전략적 측면에 기인한 게 더 크다.

그는 만약 표를 위해서 야권 단일화를 했을 경우 세대포위론과 같은 전략이 무효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김철근 국민의힘 당대표 정무실장은 야권 단일화가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고 본다. “세대연합론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시도이며 후보단일화론의 지난한 과정이 대선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도 회의적이다”라는 그의 지적은 이 대표가 우려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 특히 실제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들이 윤석열 후보로 이동할지를 데이터로 볼 때 그렇게 유의미하지 않은데 굳이 시도할 필요가 없다는 게 자강론의 입장이다.

이번 대선에서 자강론과 단일화가 등장한 책임은 오롯이 윤 후보에게 있다. 그가 가진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평가는 잘 나올 경우 40%가 넘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월 4~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정수행 평가에서도 긍정평가가 43.9%였다. 그 직전 조사에서는 45.5%를 기록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9대 대선에서 기록한 득표율이 약 41%였다. 숫자로만 따지면 스타트 라인에 섰을 때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반대로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부정평가는 대략 50%대 초반을 기록 중이다. 앞선 KSOI 조사에서도 52.7%였다. 정권교체 여론의 추세와 비슷하다. 과반이 넘는 부정평가 여론을 윤 후보가 모두 안을 수 있었다면 단일화라는 논쟁적 소재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걸 다 안지 못한 채 윤 후보의 개인 지지율이 40% 근처에서 맴돌아 생긴 문제다. 이 지점에서 정권교체 여론의 결은 두 갈래로 갈린다. 국민의힘 대선후보로의 정권교체를 바라는 다수, 그리고 제3지대 후보로의 정권교체를 원하는 소수가 있다. 전자가 대략 40%, 후자가 대략 10% 언저리 정도다.

이번 대선을 불확실한 안개 정국이라고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확실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건 후보 단일화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칸타코리아에 의뢰해 지난 2월 4~5일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35.0%,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31.0%, 안 후보는 12.1%를 얻었다. 1~2위간 격차는 오차범위 내인 4%였다. 반면 야권 후보 단일화를 가정할 경우 윤석열(윤 42.4%, 이 30.3%)·안철수(안 45.6%, 이 25.7%) 누구든 이재명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단일화의 확실성이다.

다만 이번은 단일화를 앞둔 환경이 이전 경우와 다르다. 단일화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후보끼리 합쳤을 때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단일화를 중재할 수 있는 외부 조직이 필요하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홍준표+안철수+유승민’ 대권 후보 간에도 단일후보 이야기가 있었는데 중재자로 ‘중도·보수 단일화 시민사회 원탁회의’라는 단체가 구성돼 나섰다. 합의 가능한 룰 세팅도 필요한 전제지만 이건 단일화에 관한 의지 표명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 단일화 과정에는 이런 전제들이 모두 무너졌다. 윤 후보 입장에서는 합치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두 후보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단체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후보 선출을 위한 룰 대신 ‘톱다운(Top-down)’ 방식의 담판만을 제시하고 있다. 룰 세팅도 필요 없고 합의할 시간도 부족하다.

단일화도 자강론의 전술 중 하나

윤 후보의 단일화 언급을 자강론의 전술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대표의 자강론과 큰 틀은 같지만 디테일은 다르다. 제3지대 후보로의 정권교체를 원하는 소수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단일화를 활용하는 모양새다. 제3지대로 가 있는 지지율의 규모는 지금과 같은 대선 구도에서 작지 않다. 오히려 다자구도 승리를 위해서 제3지대가 설 공간을 축소해야 하는데 단일화 논의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효과적이다. 단일화라는 연기를 피워 안 후보를 범야권 진영으로 묶어 놓고 종속적인 위치에 놓는 것만으로도 정권교체 여론이 윤 후보 쪽으로 쏠리는 걸 기대할 수 있다. 안 후보의 공간이 좁아질수록 단일화로 내줘야 할 대가는 적어지고 당내 이해관계의 복잡한 계산도 단순해진다. 종국에는 단일화 없이 승리할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여러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굳이 ‘이준석식 경종’을 울릴 필요가 없다는 믿음이 윤 후보 측에 있다. 단일화 금지가 아니라 ‘단일화를 활용한 자강론’이다.

자강론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건 윤 후보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대신 자강론이 유지되는 동안 안정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잠시 접어둬야 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민의힘이 단일화보다 자강론에만 매달린다면 정권교체가 안 될 수도 있다”고 봤다. 1~2주 사이에 판이 요동치는 게 요즘 대선 판세라서다. 게다가 국민의힘 쪽에서도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최근 상승하는 추세를 두고 주의를 요하는 목소리가 있다. 앞선 선대본 관계자는 “대통령 지지도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 지지의 선행지표로 볼 수 있는데 최근 결과는 박빙 상황에서 여당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시그널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자강론을 아무리 고집한들 윤 후보가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할수록 단일화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단일화 마지노선으로는 2월 27일이 꼽힌다. 이날은 투표용지 인쇄 하루 전이다. 이때까지 둘 중 한 명이 물러나야 용지에 ‘사퇴’가 표기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투표소 안내문으로만 표기된다.

게다가 안 후보에게도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안 후보는 2012년 대선 때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을 겪었던 장본인이다. 단일화를 할지 말지, 만약 한다면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고 자신의 협상 자산이 될 지지율을 끌어올릴 시간도 필요하다. 다만 안 후보의 결단을 강조하고 있는 윤 후보 측이 2월 말까지 재촉하지 않고 느긋하게 지켜봐 줄지는 의문이다.(인용자료는 중앙선거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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