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부터 ‘충청의 아들’임을 내세우며 충청권 민심을 적극 공략하고 나섰다. 윤 후보의 고향은 서울이지만, 그의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고향이 충남 공주이고 가문 대대로 충남 지역에 자리를 잡아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윤 후보가 검찰총장을 사퇴한 뒤 정치에 도전한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때부터 “충청이 그의 지역적 기반이 될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대선이 20여일 남은 시점에서 충청권의 표심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도권처럼 다른 지역에 비해 중도층이 많다는 점에서 충청권은 캐스팅보트 중 하나였다. 충청 지역 역시 정권교체 여론이 과반을 넘는 수준이지만, 여론조사상 후보별 지지율을 살펴보면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충청 대망론’에도 尹 근소한 우위
충청도는 아직까지 지역 출신 대통령을 배출한 적이 없다. 고 김종필 전 총리 시절부터 대선 때마다 ‘충청 대망론’은 반복됐다. 이회장 전 한나라당 총재, 이인제 전 의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이 충청 대망론을 앞세워 대권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미투 파문으로 정치적 생명이 사실상 끝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윤 후보의 대권 도전이 충청 대망론에 또 한 번 불을 지핀 셈이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 2월 2일부터 4일까지(2월 1주 차) 전국 18세 이상 150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전·세종·충청 지역에서 윤 후보는 41.9%,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9.8%로 격차가 2.1%포인트에 불과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8.6%였다. 이 조사에서 전체 지지율은 윤 후보 43.4%, 이 후보 38.1%로 5.3%포인트 차이였지만, 충청권에선 격차가 더 적게 나타난 것이다. 같은 기관의 여론조사에서도 충청권은 매번 출렁이는 민심을 보였다. 1월 4주 차에선 34.5% vs 46.9% vs 10.6%(이재명·윤석열·안철수 순), 1월 3주 차 때는 38.3% vs 40.0% vs 12.9%였다.
다만 이 같은 전국 단위의 여론조사가 충청권의 민심을 제대로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전체 사례수가 1500여명인 리얼미터의 2월 1주 차 조사의 경우, 대전·세종·충청권 응답자수는 138명에 불과했다. 1000여명을 상대로 하는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충청권 할당 인원은 100명대다. 인구 300만명이 넘는 충청권의 민심을 100여명의 표본으로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충청권 유권자만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선 윤 후보가 다소 우위를 점하고 있다. 대전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월 7~8일 이틀간 대전·세종·충남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대선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윤 후보 41.7%, 이 후보 31.4%, 안 후보 8.4%로 나타났다. 대전일보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2월 6~7일 충남지역 성인 8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는 윤 후보 47.3%, 이 후보 35.4%, 안 후보는 8.4%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가 대체로 이 후보를 앞서는 결과가 충청 지역 민심에서도 드러났다고 볼 수 있지만, 대구·경북이나 부산·울산·경남에 비해 윤 후보 지지세가 강고한 편이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충청권 국민의힘 인사들은 정권교체 여론이 과반이 넘는 지역 민심이 선거 날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안심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단 충청권의 국민의힘 조직세가 약화된 점이 윤 후보로선 약점이다. 정진석(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홍문표(충남 홍성군예산군)·김태흠(충남 보령시서천군) 의원 등 충청권 당내 중진 의원들이 윤 후보를 적극 돕고 있긴 하지만, 지역 전체 의석으로 보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열세인 상황이다. 21대 국회 충청권 의석을 살펴보면 충남 6(민주당) 대 5(국민의힘), 충북은 4 대 3이다. 대전(7석)과 세종(2석)은 전부 민주당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고,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아예 없다. 충남지사와 충북지사, 충주·청주·대전·세종·아산시장 모두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이다.
‘사드 배치’와 ‘육사 이전’이 몰고 온 논란
충남 지역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자체장과 현역 의원 수에서 국민의힘이 분명 열세인 상황”이라면서 “여당에서 충청 지역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무슨 카드를 들고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또 다른 충청 지역 한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은 “충남과 충북, 대전, 세종은 같은 충청권으로 묶이지만 민심 추이가 판이할 때가 있다”면서 “상대적으로 고령층이 많은 충남·북에 비해 대전·세종은 40~50대 인구가 많아 우리 당으로선 안심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얼마 전 윤 후보가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하고 후보지로 충청권이 거론되자 지역 민심이 술렁거렸다. 윤 후보가 직접 충청권을 사드 추가 배치 후보지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국민의힘 관계자 등을 통해 충청 일부 지역이 거론됐다. 그러자 지난 2월 3일 민주당의 충청권 의원 17명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청의 아들이라던 윤석열 후보가 충청에 준 명절 선물이 사드냐”면서 “수도권 국민이 사드 때문에 불편해할 수 있으니 충청에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민의힘과 윤 후보에겐 수도권 국민만 국민이냐”고 비판했다.
윤 후보가 항공우주청 설립을 경남 지역 공약으로 발표한 데에도 반발이 뒤따랐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카이스트 등 과학 기술 관련 주요 연구 개발 기관이 몰려 있는 까닭에 대전 지역에선 “대전이 우주항공 국가 전략을 수행할 최적지”라는 주장이 많다. 윤 후보는 항공우주청은 경남에 건립하고, 방위사업청을 대전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충청 지역에선 이재명 후보도 ‘패싱 논란’을 겪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2월 1일 경북 안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안동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해 충남 지역에서 적지 않은 반발이 일었다. 충남도는 그간 도 차원에서 ‘육사 유치추진위원회’까지 만들며 육사 유치를 적극 추진해왔다. 충남은 국방대, 육군훈련소 등 국방 분야의 상징성이 있는 논산을 기반으로 ‘국방 클러스터’ 구축을 위해 육사 유치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당장 같은 당 출신인 양승조 충남지사도 지난 2월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래전부터 육사 유치를 추진해온 충남도민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다”며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