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이번 대선에서 호남권(광주·전라) 득표율 12.75%를 기록해 공언했던 ‘30% 득표’에는 한참 모자랐다. 윤 당선인이 지난 2월 23일 전남 목포 호남동 목포역 광장에서 시민들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윤석열(62)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에게 허락된 기쁨의 시간은 그리 넉넉지 않다.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대선에 출마한 그는 일단 당선이라는 첫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난 선거 과정보다 더 험난하고 어려운 길이 남아 있다. ‘윤석열 정권’의 5년 국정 운영이 성공할 수 있는지 첫 단추를 꿰는 일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정권교체는 야권 후보가 내세우기에 가장 유효한 슬로건이었지만, 선거 승리와 동시에 폐기될 문구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에는 정권교체 그다음, 그 이상을 국민에 보여줘야 할 책무가 생겼다.

윤 당선인은 지난 3월 9일 대선에서 48.56%의 표를 얻어 47.83%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불과 0.73%포인트 차, 24만여표 차이로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소 득표차 당선이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기관들의 조사나 국민의힘 안팎에서 돌던 전망치보다 훨씬 적은 격차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대선 하루 전인 3월 8일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10%포인트 차이” 승리를 장담했지만, 실제 결과는 크게 달랐다. 대선 기간 내내 윤 당선인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과반이 넘는 정권교체 여론을 흡수하지 못하는 야권 후보”라는 지적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정권교체’ 이상을 보여줘야 할 책무

대선에선 승리했지만 윤 당선인에겐 여러 한계점이 나타난 결과였다. “20%를 넘어 30%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던 호남권 득표율은 10%대에 그쳤다. 국민의힘이 지난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부터 근래의 이준석 대표까지 집요한 서진(西進) 행보를 보인 것에 비하면 아쉬운 스코어다. 다만 선거 막판 ‘광주광역시 복합쇼핑몰 유치’ 등을 공약해 호남권 젊은 유권자들의 이슈몰이에는 성공했다. 국민의힘이 이번 대선에서 호남권 민심 얻기에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는 점 역시 평가할 만했다. 호남권(광주전라) 득표율 12.75%가 역대 보수정당 후보 중 최다 득표율이라는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호남 유권자 83%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표를 주지 않았다. 그간의 노력에 비춰보면 호남에서의 10%대 득표율은 윤 당선인이나 국민의힘에 실망스러운 수치일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윤 당선인의 옹호성 발언 등이 호남권 민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영남권, 특히 대구경북에서는 70%대의 득표를 얻었다. 적어도 호남 지역에서 윤 당선인은 ‘10%짜리 대통령’이다. 영호남 통합, 지역갈등 해소라는 끝나지 않은 과제를 해결해야 할 책무가 윤 당선인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이준석 대표가 호언장담했던 ‘세대포위론’도 사실상 반쪽짜리 전략이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이번 선거에서 20대 남성 58.7%는 윤 당선인에게 투표한 반면, 20대 여성 58.0%는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다.(방송 3사 출구조사 기준) 청년층 유권자 표심이 남성과 여성에서 거의 비슷한 비율로 서로 다른 후보에게 갈린 것이다. 윤 당선인은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원 등을 공약하면서 사실상 ‘이대남’만 바라보는 선거 전략을 구사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세대포위론’은 2030 남성의 표심을 선점해 여성들의 마음까지 끌어오겠다는 전략이었지만, 결국 ‘젠더 갈라치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0.73%포인트 차이의 초박빙 스코어와 영호남의 엇갈린 표심, 젠더 갈등이 그대로 드러난 2030 득표율 등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윤석열 정부’의 성공은 보수 유권자와 영남, 이대남들만이 아니라 그를 찍지 않은 호남, 2030 여성, 그리고 진보성향 국민들에 달려 있다는 점을 엄중하게 드러내고 있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던 만큼, 그를 뽑지 않은 국민이 향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낼 가능성이 현재로선 적다. 그 국민들의 마음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는지 여부에 윤 당선인이 공언해온 ‘국민통합정부’ 성공이 달려 있다. 윤 당선인의 국정운영 나침반은 그를 찍지 않은 절반의 반대 여론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새겨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월 1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하고 있다. photo 국회사진기자단

지역갈등 해소, 끝나지 않은 과제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유세에서 줄곧 “민주당의 양식 있는 정치인들과 협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에 협치는 미덕이 아니라 필수다. 5월 임기가 시작되면 172석의 민주당을 상대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진보성향 정당의 의석까지 합하면 180석이 넘는다. 당장 임기가 시작된 이후 국회 과반 의석(151석)의 동의가 필요한 국무총리 인준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여부부터 불투명하다. 윤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여성가족부 폐지도 국회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국회에서 국민의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인 것이다.

윤 당선인은 여의도의 낡은 정치 문법을 따르지 않는 ‘탈(脫)여의도 정치인’을 표방해왔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도 기업가 출신으로서 여의도와 거리가 먼 정치인 이미지를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다만 당시 한나라당은 2007년 12월 대선 승리에 이어 2008년 4월 총선 승리(153석)를 통해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다. 임기 시작점부터 2024년 4월 22대 총선까지는 2년여가 남았다. 집값 안정, 코로나 방역,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 청년 일자리 등 당장 대책을 내놔야 할 문제가 수북하다. 집권 초반 2년 동안 180석 야당을 상대로 입법, 인사, 예산 수립을 해야 한다. 윤 당선인이 공언한 사드 추가배치를 비롯해 국방과 안보, 대북 정책 등 외교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도 국회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거대 야당은 윤석열 정권에 탄탄대로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윤 당선인을 두고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선거 기간 내내 나왔다. 그가 ‘식물’ 처지를 면하기 위해선 압도적인 득표율이 첫 번째 조건이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선거 결과를 두고 “과반을 넘지 못한 것은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통합과 협치가 필수조건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선거 막판 극적인 단일화로 야권 통합의 발판을 마련한 점은 그나마 다행일 수 있다. 국민의힘·국민의당은 지난해 합당을 추진한 바 있지만 양측의 첨예한 대립 끝에 결렬된 바 있다. 이번에는 당시와 같은 줄다리기를 할 여유조차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부분의 대통령이 통합과 협치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문 대통령 역시 취임사에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5년 문 정권이 이 말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한 국민이 오늘의 윤 당선인을 만들었다는 것을 늘 되새겨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해 출마 선언부터 선거 마지막 날 유세까지, ‘공정·상식·법치’를 강조했다. 문 정권에서 무너뜨린 이런 가치들을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문 정권의 검찰총장이었던 그를 대통령 자리까지 오게 한 것도 윤 당선인이 문 정권에 맞서 공정·상식·법치를 지킬 유일한 대안이라고 본 여론 덕분이다. 윤미향·이상직·월성원전·라임-옵티머스·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에 대한 검찰 수사나 재판도 현 정권에서 유야무야되어 왔다. 이 사건들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도 공정·상식·법치를 되살리는 한 방법일 것이다.

다만 공정·상식·법치를 현실정치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지 윤 당선인은 고민해야 한다. 윤 당선인은 선거운동 중 언론 인터뷰에서 “현 정부 초기 때 수사한 건 헌법 원칙에 따른 것이고, 다음 정부가 자기들(현 정부) 비리와 불법에 대해 수사하면 그것은 보복인가”라며 집권 후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수사를 공언했다. “대통령은 관여 안 한다. 다 시스템에 따라서 하는 거다”라고 덧붙이긴 했지만, 문 정권이 집권 내내 적폐청산에 매달리며 국민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것을 돌이켜본다면 이러한 발언은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사이

권력 핵심이라도 불법이 드러나면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윤 후보가 말하는 공정이다. 다만 국민 여론상 공정·상식·법치 바로 세우기와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달리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문 정권 비리에 대해 엄정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정치보복, 분열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대립한다면 이를 조정하고 화합하는 것이 대통령의 몫이다. 2위 후보에 앞선 근소한 득표율만큼 그 여론의 추는 민감할 것이다.

국민의힘은 2016년 총선, 2017년 탄핵과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패배로 궤멸 직전이었다. 지난 총선 참패 이후에는 ‘극우·꼰대 정당’이라는 비아냥 속에 당 내부에서조차 “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자성이 나올 지경이었다. 대권에 나설 이렇다할 리더도 내놓지 못하던 상태였다. 통렬히 반성하고 혁신해야 할 시기에 서로 손가락질하며 분열했다.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이던 시절부터 야권 대선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야권의 난맥상 속에서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 승리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5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오게 됐다. 서울 종로와 서초갑, 경기 안성 등 5개 선거구에서 함께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국민의힘·국민의힘 출신 무소속 후보가 모두 승리했다. 지난해까지 전국 단위 선거 4연패를 겪으며 수렁에 빠져 있던 국민의힘이 다시 살아난 것은 어디까지나 문 정권의 실정과 내로남불에 질린 국민의 심판 여론 덕분이다. 2위 후보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불안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잘해서, 윤 당선인이 마음에 들어서 표를 줬다는 여론은 높지 않다. 정권교체만 바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윤 당선인을 뽑았다는 이들도 많다.

보수정당의 부활

그런 점에서 선거 내내 윤 당선인을 둘러싼 국민의힘 인사들의 잡음은 우려스럽다. 유권자들의 비판은 물론 당 내부의 극한 내홍까지 야기했던 ‘윤핵관’ 논란은 언제든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다. 경선 때부터 ‘핵심 관계자’를 자처하며 위세를 부린 이들이 대통령 인수위원회와 청와대까지 입성한다면 또 볼썽사나운 꼴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0.73%의 득표차는 오만과 독선에 빠지기도 민망한 수치다.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윤 당선인이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란 예상을 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검사 시절 ‘특수통’으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을 맡으며 격랑을 맞는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유명한 발언도 이때 나왔다. 박근혜 정권에 미운 털이 박힌 윤 당선인은 대구고검·대전고검 등 한직을 떠돌아야 했다. 그러다가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 수사팀장을 맡으며 ‘부활’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 2019년 7월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전임 문무일 총장에 비해 사법연수원 다섯 기수를 건너뛴 파격 발탁이었다.

검찰총장직에 오른 지 채 몇 달 되지 않아 그는 또 한 번 거센 파도 위에 올라탄다. 그는 검찰총장에 임명된 지 한 달여 된 시점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와 관련된 수사를 밀어붙였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원전 비리, 라임-옵티머스 등 문재인 정권 핵심부가 얽힌 수사도 강행했다. 검찰총장 청문회 당시 그를 앞장서 비호했던 여당은 등을 돌렸다. 조 전 장관의 후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는 ‘추·윤 갈등’이라는 말까지 낳으며 대립했다. 그는 결국 임기를 4개월여 남긴 지난해 3월 검찰총장직을 사퇴했다.

그는 사퇴 3개월여 만인 지난해 6월 29일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이후 같은 해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해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87년 체제 이후 최초로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0선’ 출신 대통령이다. 전직 검찰총장이 사퇴 후 대권 도전에 직행한 첫 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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