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3·9대선 패배로 당내 주류세력인 586세대를 향한 책임론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 쇄신방안으로 언급됐던 ‘586 퇴진론’이 용두사미로 끝난 만큼, 이들이 패배에 대한 본격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날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지난 30년간 진보정권의 파트너이자 진보정당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 잡은 586세대가 이번 선거를 끝으로 2선으로 물러나게 되면, 진보진영은 지금과는 크게 다른 양상으로 개편된다.
민주당에서 당장 이 후보를 비롯한 당 지도부를 향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지난 3월 10일 송영길 당대표 등 지도부가 총사퇴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우상호 선대위 총괄선거대책본부장뿐 아니라 선대위에서 요직을 맡았던 586 정치인들 역시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호중 원내대표를 비롯해 오영훈 후보 비서실장, 서영교 총괄상황실장, 윤건영 정무실장, 김영진 총무본부장 등에게 당장 비판이 쏠리고 있다.
“문 정부의 특권 계속 누리기 힘들 것”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선거의 핵심으로 작동했던 만큼, 특히 지난 정권에서 기득권 이미지가 굳어진 이들이 더는 진보진영의 전면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진보진영의 원로로 꼽히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586세대가 문재인 정부 들어 어느 세대보다도 훨씬 더 강한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을 공유하게 되면서 좋지 않은 정치 이미지를 갖게 됐다”며 “그런 이미지를 안고 정치 일선에 나서기는 어려움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때 누렸던 어떤 특권 혹은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이러한 기득권 이미지 때문에 민주당은 지난 1월 선거를 코앞에 두고 ‘586 용퇴론’을 꺼내들었다. 당시 이 후보 지지율이 30% 선에서 움직이지 않자 다급해진 당내에서 중도층을 겨냥하기 위해 꺼낸 카드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김종민 의원이 지난 1월 23일 처음 ‘용퇴론’을 꺼냈다. 그는 “386 정치가 민주화운동의 열망을 안고 정치에 뛰어든 지가 30년이다. 그동안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도 하고, 청와대 일도 했다. 그러나 그 30년 동안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출산율 등 총체적 민생 위기가 왔고, 이는 30년 동안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한 것”이라는 취지로 글을 적었다. 이에 송영길 대표와 우상호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동참했지만, 그 밖에 불출마 의사를 밝힌 정치인이 없어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종민 의원은 나중에 “정치인이 아니라 제도를 용퇴하자는 것”이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이들이 20대 대선을 기점으로 물러나게 되면, 진보정당의 주류 세력은 20년 만에 바뀐다. 1980년대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이들은 2000년대 참여정부를 기점으로 청와대나 국회에 본격적으로 입성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첫 내각 참모진에는 운동권 경력이 있는 30~40대 젊은층이 다수 포진됐는데,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김경수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 진보정권의 핵심적인 동반자 역할을 해온 여의도의 정치인들도 이때 대거 입성했다. 노 전 대통령 집권 1년 만에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에서 초선 의원은 108명에 달했는데 그중 31명이 386세대였다. 우상호 의원, 이 후보 측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조정식 의원, 특임본부장을 맡은 김태년 의원 등이 이때 합류했다.
이들의 퇴진은 2030세대의 부상으로 인한 불가피한 세대교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0대 대선 국면에서는 전에 없이 2030의 목소리가 주목을 받았는데, 청년 세대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586세대의 집단주의적 정치 행태는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한상진 교수는 “50대 이상이 중심에 서는 건 세대 구조상 불가피한 데다가 우리나라만큼 응집성이 강한 정치 세대가 없을 정도로 이들이 국가 권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며 “이들은 이 결집력을 정권의 성공 카드로 받아들이면서 더 철저해졌는데, 자유주의적 가치를 강조하는 20대와 가치관이 다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가치관 차이 때문에라도 젊은층이 586세대를 점점 더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논리적으로 거의 필연적”이라고 설명했다.
청년 정치인이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586의 퇴진이 필요하다는 측면도 언급된다. 송 대표가 앞장서고 나선 ‘586 용퇴론’이 용두사미로 끝나자, 이동학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 1월 27일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586 선배님! 말을 꺼내셨으면 실행하셔야죠! 이런 정치 물려주실 겁니까”라고 공개 저격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패배와 민주당 586 세력의 패배를 동일시하기는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후보부터 대선 결과에 승복하며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저에게 있다. 여러분의 패배도 민주당의 패배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당과 선을 긋고 나섰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연 586이 잘못해서 이재명 후보가 선거에서 실패했는가, 그게 패배의 원인인가 이런 맥락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 후보를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지도부, 선대위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이 주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이들을 대체할 만한 대안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586 정치’가 사라지기는 쉽지 않을 거란 분석도 있다. 이 교수는 “단순히 세대만 가지고 얘기하기는 어렵다”며 “2030은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586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 또 60~70대 의원들은 괜찮은 건지 등 대안과 한계에 대한 답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도 “지금 이 견고한 집단을 대체할 만한 세력은 (민주당 내) 없다”며 “586이 특이하리만큼 어느 세대보다도 내부적으로 강하게 응집한 측면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돼 있거나 영향력을 누리는 다른 세력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 신뢰를 잃고 대거 낙선했던 ‘386 초선 정치인’들이 10여년 후 진보정권에서 그대로 복귀한 선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참여정부가 힘을 잃으면서 18대 총선에서는 대거 낙선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출신 386 정치인들은 문재인 정권에서 주요 요직에 올랐다. 당시 17대 총선에서 대거 당선된 초선 의원들은 국민 통합, 경제 성장, 부동산 정책 등 민생 현안에 미숙한 모습을 보이며 국민의 실망을 샀고, 이 때문에 18대 총선에서는 이인영·오영식·임종석·정청래 의원 등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그러나 10여년 후 문재인 정부에서 이들은 다시 청와대 등 요직에 복귀했다. 당시에도 ‘386 정치’에 대한 자성과 혁신의 요구가 있었지만 별다른 변화 없이 진보정권에서 다시 등장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민주당 586세대의 향방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