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양산 물금신도시에 있는 경부선 물금역. 양산시가 KTX 정차를 추진 중이다.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오는 5월 9일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 사저로 복귀를 앞둔 가운데, 양산시의 숙원사업인 KTX 양산 정차가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실(양산시갑)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국가철도공단(KR) 등 관계 기관들과 함께 KTX의 양산 물금역 정차를 위한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KTX의 물금역 정차를 위해서는 20량 1편성 KTX-1 기준으로 기존 승강장 길이를 120m가량 늘려야 한다. 양산시에 따르면, 승강장 연장 등에는 최소 3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에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의 ‘귀향 선물’이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인구 35만명의 양산시는 오래전부터 양산 관내를 통과하는 KTX의 물금역 정차를 추진해 왔다. 그간 양산 주민들은 KTX를 탑승하기 위해 부산 구포역이나 울산역을 이용해 왔다. 양산의 주민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물금신도시에서 거리상으로는 구포역이 15㎞가량 가깝지만, 구포역 경유 KTX는 옛 경부선(재래선)을 이용하는 터라 속도가 느리다. 경부고속철 신선(新線)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울산역으로 가야 하지만, 물금신도시에서 울산역까지는 45㎞가량 떨어져 있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마침 경부선 KTX 가운데는 신경주와 울산을 경유하는 경부고속철 신선이 아닌 옛 경부선(재래선)을 이용해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철도편이 있다. 해당 KTX는 낙동강변의 양산 물금역을 통과해 서울과 부산을 오간다. 평일 기준 상·하행선 각각 7편씩 물금역을 통과하는데, 이 KTX를 물금역에 세워달라는 것이 양산시민들의 요구였다. 양산시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양산으로 복귀하면 KTX 양산 정차가 탄력을 받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왔다.

양산시는 지난 3·9대선을 앞두고 KTX의 양산 정차를 각 당 대선 공약에 포함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기도 했다. 특히 김일권 양산시장이 경남에서 몇 안 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이고, 양산시 국회의원 중 한 명인 민주당 김두관 의원(양산시을)이 선거 초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해서 이재명 후보 측이 공약에 ‘양산 정차’를 포함시킬지 상당한 기대를 걸어왔다. 이재명 후보가 지난 1월 양산 통도사를 찾았을 때 김일권 시장은 KTX 물금역 정차 공약을 건의했고, 이 후보도 상당한 관심을 표한 것으로 알려진다.

선거과정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현 당선인) 역시 ‘KTX 양산 물금역 정차’를 약속하기는 했지만, 양산시는 내심 이재명 후보 쪽에 기대를 걸어온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는 양산에서 경남 전체 득표율(37.38%)보다 높은 42.18%를 득표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가 낙선하면서 양산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퇴임 전 KTX의 물금역 정차문제를 매듭지어 주고 낙향해주기를 내심 고대해 왔다. 김일권 양산시장은 지난 1월에도 김두관 의원과 함께 청와대를 찾아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수현 국민소통수석 등에게 KTX 물금역 정차를 건의하기도 했다.

노무현 퇴임 후 진영역 정차와 유사

KTX의 양산 물금역 정차는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과 가까운 진영역에 KTX가 정차하게 된 것과도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 경전선 복선전철화(삼랑진~마산) 개통을 앞두고 당초 KTX가 정차하려 했던 곳은 김해시 진례면에 있는 진례역이었다. 경전선에서 부산신항 배후철도가 분기하는 곳이 진례역이고, 인구가 많은 김해 내외신도시와 장유신도시도 진례역과 더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센터가 당초 KTX 정차역으로 제안한 곳도 진례역이었다.

하지만 KTX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너른 벌판의 진례역이 아닌 야산을 깎아 만든 진영역에 정차하게 됐다. 급작스레 KTX가 정차하면서 한동안 진영역은 나무판으로 임시승강장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진영역은 야산을 절개해 만든 터라 역사 배후부지 조성도 사실상 어렵다. 철도계의 한 관계자는 “당초 KTX의 진례역 정차를 계획하고 역사도 큼직하게 지었는데 정차역이 진영역으로 바뀌면서 진례역은 유령역이 됐다”며 “진영읍 주민들의 민원도 있었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가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점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KTX의 양산 물금역 정차 역시 ‘문재인’ 이름 석자를 빼놓고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양산에 KTX가 정차하지는 않지만, 옛 경부선 철도를 이용하는 KTX를 포함한 모든 열차가 정차하는 구포역이 15㎞ 내외다. 물금역에서 구포역까지는 ITX-새마을호와 무궁화호로도 불과 8분 거리다. 철도계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인구 8만명의 전북 김제시와 인구 4만명의 전남 장성군에도 KTX를 세우기로 하면서 인구 35만명 양산시의 요구를 마냥 묵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퇴임 다음날인 오는 5월 10일쯤 양산으로 귀향할 것으로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내외가 어떤 교통편을 이용할지도 주목된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내외가 KTX를 타고 낙향했던 사실에 비추어보면, 문 대통령 역시 KTX 편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2월 퇴임 직후, 청와대를 나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밀양역에서 내린 뒤 차량 편으로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까지 갔다. 당시만 해도 진영역에 KTX가 서지 않을 때였다 .

이 같은 전례를 따르면 문 대통령 역시 서울역에서 KTX 편을 이용해 울산역에서 내린 뒤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로 향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문 대통령의 신축 사저가 있는 평산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양산에 속하지만 울산역과 더 가깝다. 울산역에서 평산마을까지는 거리로 13㎞, 자동차로 불과 20분 정도 거리다.

하지만 양산시 측은 문 대통령 내외가 양산으로 귀향한다는 의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양산 물금역을 이용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피력한 바 있다. 김일권 양산시장은 지난 1월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욕심 같아서는 우리 대통령님이 퇴임하시고 물금역에서 KTX를 내리시면 얼마나 좋겠나”라며 “대통령이 양산에 내려오시면 양산은 더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양산 물금역에서 하북면 평산마을까지는 거리상 34㎞, 자동차로 35분 정도 소요돼 울산역을 이용하는 코스보다 더 멀다. 경호상 부담은 가중되지만, 퇴임 대통령이 양산으로 귀향한다는 상징적 의미는 부여할 수 있다.

양산시 도시철도팀의 한 관계자는 “양산 상북면 천주교 하늘공원에 문 대통령의 부모 선영이 있는데 물금역에서 내려 자연스럽게 참배를 하고 사저(하북면 평산마을)로 가면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라며 “KTX의 양산 정차는 관련 절차와 공사기간 등을 고려하면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한 일로 다음달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했다.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