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방식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둘로 나뉜다. “사람 귀한 줄 안다”는 긍정적인 반응과 “내 사람만 챙긴다”는 비판적 시각이다. 윤 당선인의 이러한 인사 스타일은 그의 사회 경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검사 시절에서 기인했다는 평가다.
윤 당선인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세간에 이름을 알린 지난 2013년 국회 국정감사장. 당시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었던 윤 당선인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에 대한 정권의 압력을 폭로했다. 이후 그는 물론 댓글수사팀에 몸담았던 검사들 중 상당수가 좌천되며 한직을 돌았다. 평검사 시절부터 자신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검사들이 불이익을 받는 것에 대해 윤 당선인은 안타까워하면서도 별다른 도리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윤 당선인은 당시 특별수사팀 부팀장이었던 박형철 변호사(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가 좌천성 인사 이동 이후 옷을 벗으려고 하자 “차라리 제가 나가겠다. 인사를 거둬달라”라는 뜻을 당시 박근혜 정권 민정라인 등에 전했다고 한다. 웬만한 외압에는 굴하지 않는 윤 당선인이었지만,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불이익 못 참아
윤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역시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후보자를 두고 “독립운동하듯 수사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왜 A 검사장(한동훈 검사장을 지칭)을 무서워하냐. 정권에 피해를 많이 입어서 중앙지검장 하면 안 되는 거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 한 달 전 이뤄진 이 인터뷰는 파장이 컸다. 윤 당선인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 후보자를 언급하며 “중앙지검장 하면 안 될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바로 이어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수사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3일 윤 당선인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한 검사장을 지명하자 정치권이 술렁였다. 특히 민주당에서 날선 반응이 나왔다. 한 후보자에 대한 ‘송곳 검증’을 예고하면서도 한편에선 “청문회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윤 당선인이 한 후보자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와 그가 한번 믿음을 가지면 쉽게 내치지 않는다는 점에 비춰볼 때, 민주당이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더라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다.
윤 당선인과 한 후보자는 과거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2006년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 등 대형 수사를 함께 하며 인연이 시작됐다. 문재인 정권 들어 서울중앙지검장-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찰총장-대검 반부패부장을 맡으며 호흡을 맞췄다. 한 후보자는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벌인 이후 연이어 좌천됐고, ‘검언유착’ 의혹으로 검찰 수사까지 받아야 했다. 자신이 ‘데리고 있던’ 부하 검사가 좌천을 거듭하고 정권으로부터 억압받는 모습을 지켜본 윤 당선인으로선 한 후보자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윤 당선인이 사람에 대한 신뢰를 쉽게 거두지 않는다는 점은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의 경우에서도 잘 나타난다. 장 비서실장은 지난해 8월부터 윤석열 경선 캠프 상황실 총괄실장을 맡는 등 윤 당선인의 정치 입문 초기부터 핵심 측근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아들인 래퍼 용준씨(예명 노엘)가 음주운전과 경찰폭행 등의 물의를 일으켜 논란이 일자 총괄실장직에서 사퇴했다. 장 비서실장이 아들 문제로 사표를 내자 당시 윤 당선인은 “원래 자식 문제는 내 뜻대로 안 되는 거 아니냐”면서 이를 반려했다고 한다. 장 비서실장은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결정된 이후 비서실장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또다시 ‘윤핵관’ 논란 등이 이어지자 “윤 후보 곁을 떠나겠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장 비서실장은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 측과의 단일화 협상에 나서는 등 여전히 윤석열 당선인의 신임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단일화에 성공했고 대선에서도 승리하자 윤 당선인은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도운 장 비서실장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로 당겨왔다.
쉽게 사람을 내치지 않는 윤석열 당선인의 이 같은 인사 스타일은 때로 독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다. 경북대병원 병원장 출신인 정 후보자는 두 자녀가 같은 대학 의대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그의 아들이 2급 현역에서 5년 만에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 사투가 벌어지던 2020년 3월 심야에 술집과 식당 등에서 법인카드를 결제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정 후보자는 “불법도 특혜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21일에는 “국민의 눈높이가 도덕과 윤리의 잣대라면, 거기로부터도 떳떳할 수 있다”면서 자진사퇴론에 대해 “도덕적·윤리적 잣대로도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말로 대신하겠다”고 반박의 강도를 높였다.
“검사와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달라야”
정 후보자에 대한 여론은 국민의힘 내에서도 부정적인 상황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사”라면서 “여론의 역풍을 견뎌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분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윤 당선인은 정 후보자에 대해 지명철회나 사퇴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배현진 인수위 대변인은 지난 4월 18일 정 후보자 논란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적임자인지 판단해주면 좋을 거 같다”고 밝혔다. 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당선인 측이 ‘결단’할 의사는 없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일각에선 정 후보자 논란이 과거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유사하다며 윤 당선인의 ‘공정’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윤 당선인과 정 후보자는 ‘40년 술친구’라고 알려져 있지만, 윤 당선인이 정 후보자를 ‘비호’해야 할 만큼 가까운 사이인지 자세히 드러난 바도 없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이 정 후보자를 섣불리 내치지 않는 데에는 검사 시절 자신에게 각종 의혹과 루머 등이 쏟아지던 상황의 답답함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2020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윤 검찰총장은 부인과 장모 관련 질문이 나오자 “공직이라는 건 엄정한 검증도 받아야 하지만, 그것은 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정당하게 일하는데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면 누가 공직을 하겠느냐”고 토로한 바 있다.
다만 국민 여론을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검사 때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그렇게 사람 대하는 스타일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도 “국민들은 권력자가 국민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느낄 때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윤 당선인도 (인사 관련)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