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면서 서울양평고속도로의 운명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앞서 지난해 7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 보유토지와 관련한 의혹이 제기되자,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 자체를 백지화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을 김건희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로 규정하고 지난 총선에서도 서울양평고속도로 국정조사를 실시할 방침을 누차 밝히는 등 선거쟁점화했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 3월 7일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직접 경기도 여주·양평 지역구에 출마한 민주당 최재관 후보와 함께 양평군 강상면 일대를 찾기도 했다. 이날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서 맞붙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을 겨냥해 “노선을 변경하려다 의혹이 제기되자 국책사업까지 백지화하는 무책임한 정권과 원 장관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며 “국정농단이라고 하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이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사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민주당이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을 비롯한 전체 선거에서 압승한 와중에도 양평에서는 국민의힘 김선교 후보가 당선됐다.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은 양평에서도 이번 총선 최대 쟁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최재관 후보는 양서면을 잇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원안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김선교 당선인은 강상면을 연결하는 대안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한데 양평군민들은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는 대안에 힘을 실은 국민의힘 김선교 당선인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대안 주장 국민의힘 김선교 당선
경기도 여주시와 양평군이 합쳐진 도농복합 선거구인 여주·양평 선거구에서 국민의힘 김선교 당선인은 7.17%포인트 차로 민주당 최재관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양평군 9급 공무원 출신으로 3선 양평군수를 지낸 김선교 당선인은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최재관 후보를 누르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으나, 회계책임자의 선거법 위반으로 지난해 5월 의원직을 상실했다. 하지만 본인은 무죄를 받아 22대 총선에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재출마했고 결국 다시 여의도로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김선교 당선인은 인구 11만여명 여주에서는 최재관 후보를 2.83%포인트 차로 눌렀고, 인구 12만여명 양평에서는 두 자릿수인 10.79%포인트 차로 격차를 더욱 벌렸다. 결국 인구가 1만명가량 더 많은 양평에서 김선교 당선인에게 힘을 실어준 셈이다. 반면 울산 출신으로 여주에 귀농해 농민운동을 하면서 지난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초대 농해수비서관을 지낸 최재관 후보는 2020년 총선에 이은 김선교 당선인과의 ‘리턴매치’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자연히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을 ‘국정농단’으로 규정한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등 범야권이 향후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앞세워 서울양평고속도로와 관련한 국정조사를 관철시키더라도 그 힘은 예전만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고속도로 종점 변경과 관련해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린 양평군에서 선거결과를 통해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는 대안에 무게를 실어주면서다.
이는 서울양평고속도로 원안과 대안노선의 시종점과 고속도로 진출입로(IC) 예정지 인근의 세부 선거결과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국민의힘 김선교 당선인은 당초 원안에서 서울양평고속도로 시종점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남한강 이북 양서면은 물론, 대안노선의 시종점인 남한강 이남 강상면에서도 모두 최재관 후보를 눌렀다.
김 당선인은 양서면과 강상면에서 각각 592표와 641표 차이를 기록했고, 특히 대안에서 고속도로 진출입로(IC)가 들어설 예정인 강하면에서는 무려 2배 가까운 표차를 기록했다. 김 당선인 측은 강하IC 신설을 위해서는 대안노선으로의 변경이 필요함을 누차 밝힌 바 있는데, 결국 강하IC 개설 필요성이 투표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고속도로 IC 예정지 2배 표차
반면 양평군에서 민주당 최재관 후보가 김선교 당선인을 이긴 곳은 관외 사전투표와 국외 부재자투표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지역사정을 잘 아는 유권자들은 대안을 주장하는 국민의힘 김선교 후보에게 투표하고, 선거날 불가피한 이유로 타 지역에서 투표했던 유권자들은 원안을 주장하는 민주당 최재관 후보에게 표를 던진 셈. 심지어 원안을 주장한 최재관 후보가 낙선한 것과 관련해서는 “이 고속도로는 양평 사람들 때문에 뚫는 게 아니고 주말에 놀러오는 사람들 때문에 뚫는 도로”라는 과거 발언이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 3년 내에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이 재개되더라도, 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지사나 안철수 의원 등 국민의힘 일각의 주장처럼 원안으로 재차 되돌리는 데는 또 한 번의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고속도로가 국토부 사업이라고는 하지만 양평군민들이 선호하는 노선이 선거를 통해 드러난 상황에서 지역민들의 주장을 마냥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10월 국토부가 실시한 원안과 대안의 경제성 비교에서도 대안노선의 비용편익(B/C)이 0.83으로 원안(0.73)에 비해 더 높게 측정된 바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대안은 원안에 비해 총연장이 2㎞가량 길어지면서 사업비가 600억원가량 더 추가되지만, 일일 교통량은 22.5%(6078대) 더 흡수해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체증을 완화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양평군을 이끌고 있는 전진선 양평군수도 국민의힘 소속으로 대안노선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전진선 양평군수는 과거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양평군은 남한강 상수원 보호를 위해 주민들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친환경 농업을 고집하는 등 노력을 이어왔는데, 예타안(원안)은 상수원은 물론이고 철새도래지 수변구역까지 관통해 환경훼손에 주민 노력까지 물거품으로 만든다”고 원안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원안은 2600만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원인 ‘팔당상수원 특별보호구역’을 교량으로 두 번 관통해야 한다.
한편 김선교 당선인은 “이번 선거 결과로 내 주장이 옳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국토부 예산에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예산이 일부 반영돼 있는 만큼, 윤석열 정부 임기 내 대안노선으로 착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