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가 정쟁의 한복판에 서버렸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과 국민의힘이 헌법재판관 3명(문형배·이미선·정계선)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정치 성향을 문제 삼으면서다. 이들 모두 진보 성향 법관 모임으로 분류되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법원 내에는 전문분야에 따라 13~15개의 공식 연구모임이 있는데, ‘우리법연구회’는 보수 성향 법관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와 대척점에 서있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우리법연구회’와 ‘민사판례연구회’는 법원 내 학술단체이지만 과거에도 정치권에 의해 수차례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여권에서 쏘아올린 ‘정치 판사’ 논란이 헌재를 뒤흔들자 법조계에서는 여러 우려가 나온다. 서울서부지법 소요사태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법원의 존립 기반인 신뢰와 권위가 위협받게 됐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으로 인해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이 같은 논란은 향후 윤 대통령 극렬 지지자 등 일부 세력에 불복의 불씨를 남길 가능성도 있다. 앞서 일부 극우 세력은 정치권이 불붙인 서부지법 영장전담판사의 정치 편향성 논란을 이유로 서부지법 담을 넘은 바 있다.
與 ‘정치 판사’ 주장 배경에 ‘우리법연구회’
“헌법재판소가 민주당식 독재에 제동을 걸어야 하지만,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정계선·이미선 헌법재판관이 모두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오히려 공정성 논란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은 우리법연구회 출신 법관들을 사법 요직에 앉히고, 이들은 좌편향 판결로 보답하며 민주당 공천을 통해 입법부로 진출해 왔다.” “마은혁 재판관이 임명되면 9명의 헌법재판관 중에 4명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우리법연구회가 자기들 말대로 학술단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법원인 헌법재판소 구성원 9명 중에 4명, 50% 가까이 차지했다는 것은 우리법연구회 출신들이 지나치게 과대 대표돼 있는 것이다. 전국 법원의 판사들 중에 우리법연구회, 우리법연구회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이 아마 10%에서 15% 정도 남짓 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월 30일 기자회견과 2월 3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연이어 헌법재판관들의 정치 편향 문제를 제기했다. 권 원내대표는 문형배 소장 권한대행과 정계선·이미선 재판관,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가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데 주목했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제5공화국 시절 임명된 김용철 대법원장의 연임에 반발해 일어난 ‘제2차 사법파동’을 주도한 소장 판사들이 모여 만든 법원 내 모임이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박시환 전 대법관이 창립멤버로 알려져 있으며,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한동수 전 대검찰청 감찰부장 등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헌재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은 ‘선입선출(先入先出)’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더욱 불거졌다. 헌재는 먼저 제기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심리를 미룬 채 뒤늦게 제기된 최상목 권한대행의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건에 대한 위헌 여부(권한쟁의·헌법소원심판)부터 판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 2월 3일 권한쟁의 사건 선고를 당일 연기해 ‘졸속 심판’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국회의장이 국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국회 이름으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청구의 적법성을 추가로 살펴보기 위해서라는 설명이었지만, 기초적인 사안을 미리 살펴보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헌재가 중요한 쟁점마저 놓치고 선고를 서두르자 헌재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지난 1월 31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접수된 문형배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청원안에는 지난 2월 6일 1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이라는 위중한 상황에서 헌재가 흔들리는 것은 법치주의의 마지막 보루가 흔들리는 것과 같다는 우려도 나온다. 헌재의 결정은 최고 사법기관의 종국적 유권해석인 만큼, 결정에 이견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윤 대통령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됐는데도 불복 움직임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처음 겪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일부 세력이 헌법기관인 헌재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시도를 할 경우 또다시 내란 이슈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정치적 갈등의 마지막 심판자이자 헌정체제의 최후 보루라는 헌재가 왜 쉽게 흔들리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헌재를 흔드는 정치권의 의도적 도발도 문제지만 헌재 자체가 갖고 있는 취약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사법부의 원죄와도 같은 ‘정치 판사’ 논란의 흑역사에서 헌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의 일부 재판관에게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사모임 관련 논란이다.
우리법연구회는 2009년 기준 회원 129명(당시 현직판사의 3% 규모)을 보유했으나, 2010년 사실상 해체됐다. 2011년 출범한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법연구회가 해체된 원인으로는 회원 명단 공개에 따른 부담감, 당시 한나라당 등 정치권의 압박이 언급된다. 한나라당은 법원이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공중부양 사건’과 시국선언에 서명한 전교조 교사들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는 등 편향됐다는 비판을 받자 그 원인으로 우리법연구회를 지목하며 해체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법원은 법관의 내·외부 단체활동 기준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법원 내 법관모임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는 2017년 문재인 정권 당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임명되는 과정에서도 자유한국당에 의해 편향성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김 전 대법원장은 두 연구회의 회장을 지냈다. 당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올해 초 사법부를 뒤흔든 법관 블랙리스트 파동은 우리법연구회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주도했다”며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를 흔들었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정책자료집 ‘사법부 내 편향된 조직,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우리법연구회가 1993년 3차 사법파동(김덕주 대법원장 퇴진운동)과 신영철 대법관 퇴진 운동도 주도했다고 명시했다.
사법농단 연루 ‘민사판례연구회’도 논란
주 의원이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주도했다”고 지적한 ‘법관 블랙리스트 파동’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과 연결된다. 사법농단 의혹은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이 법원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특정 재판에 개입하고,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등 사법행정권을 부당하게 남용했다는 의혹이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1월 무죄를 선고받고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는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산하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이 50번 넘게 등장한다. 양승태 대법원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 등을 사찰하고, 인사모 와해를 위해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를 적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이탄희 판사(전 민주당 의원)의 인사발령 취소 논란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시발점이 됐다. 이탄희 판사는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 제2심의관으로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열기로 한 학술대회를 견제하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고, 이에 행정처는 복귀 인사 발령을 냈다. 이탄희 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법원 내부에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양승태 사법농단 의혹 수사 과정에서 정계선 재판관은 법관 사찰의 피해자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은 법원을 정치적 편향 논란으로 끌어당겼다. 이 과정에서 그가 몸담았던 보수 성향 법관 모임 ‘민사판례연구회’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2018년 12월 사법농단에 연루돼 대법원 징계가 의결된 판사 8명 중 4명이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양승태 대법원에서 민사판례연구회 출신 법관은 법원행정처 요직을 꿰찼다. 2015년에는 민사판례연구회가 ‘하나회’로 불리며 비판받자 양승태 대법원 행정처는 고위 법관들과 행정처 소속 법관들의 탈퇴 방안, 판사 출신이 아닌 변호사·검사 대거 영입 등을 검토하는 ‘민판연 관련 대응방안 검토’ 대외비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학술단체 중 하나인 민사판례연구회를 ‘법원과 동일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민사판례연구회는 당초 ‘민법학의 대가’라 불리는 곽윤직 전 서울대 교수가 제자들을 중심으로 학계(교수)와 실무계(법관) 인사를 모아 1997년 결성한 학회다. 보수성향 모임으로 알려져 있으며 결성 이후 서울대 법대 출신만 회원으로 선발해 왔으나, 사법부 내 위화감 조성과 관료화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이후 비서울대나 비법대 출신 판사·교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2010년 기준 181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법관을 지낸 19명 중 8명이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었다. 주요 인물로는 양창수·민일영·김용담 전 대법관, 이공현·목영준 전 헌법재판관, 김황식 전 감사원장,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등이 있다.
‘정치 판사’ 논란 키운 건 결국 정치
‘우리법연구회’와 ‘민사판례연구회’는 정치권에 의해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지만, 사실 법조계 인사들은 두 모임에 대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진보 성향의 헌법재판소 출신 변호사는 보수 성향 법관 모임으로 알려진 민사판례연구회에 대해 “소년등과(少年登科)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초임인 1, 2등 하는 소위 엘리트들끼리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자기들끼리 밀어줬다”면서도 “판사들이 들어가려고 엄청 노력했다. 우수한 인물들만 모이다 보니 또 잘나갔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법연구회에 대해서는 “이념적인 커뮤니티라기보다는 법원의 관료화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단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에 법원의 관료화가 고도화되면서 일반 법관들의 반발이 거셌다”며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으로 여겨지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권위적인 체제를 비판하다 보니 진보 성향으로 비쳤지만, 원래 진보 성향이 강한 곳은 노동법연구회”라고 전했다.
반대 진영에 물어도 대답은 비슷하다. 보수 성향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법연구회에 대해 “연구회 자체로 문제가 된 적은 전혀 없다”며 “원래는 민사판례연구회에 계셨던 분들이 행정처를 많이 갔지만, 사법농단 사태 이후 행정처에 있던 분들이 조사를 받고 대법원장이 교체되면서 대법원장이 잘 아시는 분들이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에 있었으니 그분들을 기용하게 되면서 약진이 두드러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민사판례연구회에 대해서는 “기용 등에 있어서 안배를 많이 하려고 했던 것 같다”며 “변명일 가능성도 있지만, 양승태 대법원에서 법관 사찰 의혹이 불거진 것도 법원을 균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파악 차원이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김형두 헌법재판관의 과거 판결은 법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몸담았던 법관 모임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예시라 볼 수 있다. 김 재판관은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으로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지만,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의 정책자료집 ‘사법부 내 편향된 조직,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좌편향성 판결’을 내린 판사로 이름을 올렸다. 주 의원은 김형두 판사의 한명숙 국무총리 무죄 판결과 곽노현 교육감 벌금·석방 판결을 좌편향성 판결로 지적했다. 그러나 김 재판관은 지난해 안동완 검사, 2023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을 기각했다.
그럼에도 ‘정치 판사’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부가 사법농단 의혹으로 신뢰를 잃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부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으로 신뢰를 잃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지난 2월 1일 문형배·이미선·정계선 재판관이 스스로 탄핵심판 심리에서 빠져야 한다는 회피촉구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면서 이를 언급했다. 이미선 재판관의 배우자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재판거래 의혹 및 대장동 50억 클럽으로 재판받고 있는 권순일 전 대법관과 같은 법무법인에 근무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법관을, 보수 정당이 집권한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에서는 민사판례연구회 출신 법관을 줄 세우다 보니 현재 상황까지 오게 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임명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다. 헌법재판관은 대법관과 비슷한 지위이기 때문에 관례상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재판관 후보자는 보통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 급으로 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두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지방법원 부장판사 급으로 낮추는 파격인사를 단행했다”며 “정치적 편향성이 심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파격인사를 해준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일관되게 민주당 편을 들었다”고 지적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결국 판결을 국민들이나 당사자에게 납득시키는 것은 공정해 보이는 외관이다. 판사들이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설득력을 가지는데, 지금의 헌재는 일부 국민들에게 ‘불공정해졌다’는 이미지로 불신을 안긴 채 판결을 내리게 됐다”며 “현 상황에서는 윤 대통령 측이 불복하거나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지 않은 헌법재판관들에게 다른 판단을 할 여지가 생길 수 있게 됐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