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시스템 서버 촬영하는 계엄군 -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경기 과천 청사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거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모습이 담긴 선관위 폐쇄회로 TV 장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선포 이유 중 하나로 ‘부정선거 의혹’을 내세우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시스템이 해킹으로 침투할 수 있을 만큼 부실한 정황이 확인된 데다가 실제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적잖은 만큼 진상 파악을 위해 선관위에 계엄군을 투입했다는 주장이다. 부정선거 의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치러진 1987년 대선 이후 작년 22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처럼 선거 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어져 온 부정선거 의혹을 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이 문제가 여론 지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9일 뒤인 작년 12월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차마 밝히지 못했던 심각한 일”이라며 부실한 선관위 선거 시스템 등이 계엄 선포의 한 원인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재작년 10월 국가정보원의 선관위 보안 점검 결과를 보고받고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워 국정원의 보안 점검 권고를 거부하다가 여론 비판이 커지자 마지못해 수용했다. 이렇게 성사된 보안 점검 결과 초보적 해킹 수법만으로도 선관위 내부 시스템에 침투해 선거인 명부에 접근하거나 개표 결과를 조작하는 일이 가능했다고 국정원은 발표했다. 국정원은 조사 직전 2년간 선관위가 악성 코드와 해킹 메일 공격을 8차례 받았고, 이 가운데 7번이 북한 정찰총국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부정선거 의혹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좌우(左右) 진영 모두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198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가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에게 패하자 평민당은 “부재자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 부정이 발생했다”며 ‘컴퓨터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2002년 대선 때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2.33%p 차이로 이기자 한나라당이 당선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1월엔 이재명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18대 대선을 “3·15 부정선거와 맞먹는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그해 4월엔 방송인 김어준씨도 18대 대선 부정 의혹을 다룬 영화 ‘더 플랜’을 개봉했다.

2020년 총선 이후 선거 무효 소송 180여 건이 제기됐으나 대법원이 관련 의혹을 사실로 인정한 적은 없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직후 공개한 육필 원고에서 “부정선거 증거는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변론에 출석해선 “사실을 확인하자는 차원에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 것”이라고 했다. 법원 재판 과정에서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정도의 증거 조사 등 심리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야권에선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선관위도 “조직적 부정선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의혹을 제기하는 쪽에선 “선관위가 투·개표 시스템에 대한 전면 조사를 허용한 적이 없고 선관위가 선거 무효 소송에서 제출한 통합선거인명부 사본도 선거인 이름·주소가 삭제돼 있어 이들이 실제 투표했는지 확인·검증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한다. 한 법조계 인사는 “윤 대통령은 과거 ‘부정선거 의혹은 변혁적 상황이 아니고서는 규명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선관위원장을 현직 대법관이 맡고 있는 데다, 정치권의 선거 승패가 연계된 사안이어서 부정선거 의혹을 감사원이나 검찰이 전면 조사하거나 선거 소송을 통해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픽=이철원

이런 가운데 계엄 사태 이후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한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조선일보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1~2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43%가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2년 전 주간조선·현대리서치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38.2%가 “선거 조작이 있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조선일보·케이스탯 조사에서 보수라고 밝힌 응답자 중에선 70%가,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밝힌 응답자의 78%가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40대 응답자 중에서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는 31%, ‘공감하지 않는다’는 69%였다. 반면 20대에선 ‘공감한다’가 48%, 30대는 41%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