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에서 가장 무서운 게 팬에서 안티가 된 사람들이라 했던가. 한때 ‘천아용인’으로 불리며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 정치적 노선을 함께했던 허은아 전 개혁신당 대표의 맹공에 이 의원의 대권 가도가 순탄치 않을 조짐이다. 당 지도부가 두 쪽 나며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데 이어, 고소·고발전으로 번진 당내 갈등을 잠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허 전 대표는 이 의원의 약점을 잘 아는 인물이다. 연이은 의혹 제기와 폭로에 이어 검증플랫폼 ‘엑스(X)’를 통해 논란이 됐던 이 의원의 과거 언행도 재조명하고 있다. 이준석 의원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대선주자 비호감도 1위를 기록했다.
부정회계 고발 이어 유착 의혹까지
당원소환제에 의해 대표직을 상실한 허 전 대표는 지난 2월 7일 법원이 자신의 대표직 상실 관련 효력정지 가처분을 기각하자 항고에 나섰다. 더불어 부정회계 의혹을 제기하고 이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허 전 대표 측이 제기한 부정회계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이 의원이 당대표 시절 홈페이지 운영 계약을 특수관계에 있는 업체와 맺고 월 1100만원(총 1억5000만원)의 비싼 금액을 지불하는 등 정당 자금을 사적으로 사용했고 △이 의원이 당 산하 혁신연구원장 때 공개입찰 규정을 어기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치컨설턴트에게 5500만원 상당의 연구 용역을 맡겼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해당 고발 사건을 공공수사2부에 배당하고 검토에 착수했다.
고발 이후에도 폭로가 이어졌다. 허 전 대표 측은 비교섭단체 정책지원금 9221만원이 연구자 14명에게 지급된 과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이준석·천하람 의원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익 제보했다. 천하람 의원실이 연구 성과물을 취합했지만 허 전 대표에게 보고된 내용이 없고, 연구자들이 전문성과 관련 없는 분야에 대해 용역 수주했다는 주장이다. 관련해 허 전 대표 측 정국진 전 개혁신당 대변인은 “정책 연구 과제는 원래 당에서 해야 하는데, 3명의 의원이 가져가 각자 4~5명 되는 연구자에게 그냥 연구 용역을 맡겼다”며 “정책지원금을 받은 연구자 14명 중 한 사람도 혁신연구원으로부터 5500만원 상당의 연구 용역을 받은 정치컨설턴트와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2월 16일에는 2023년 10월 24일 이 의원이 한 인물과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이 의원과 특정 언론 간 유착 의혹도 제기했다. 앞서 제기한 부정회계 의혹은 당 외부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유착 의혹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의원과의 언론 유착 의혹이 제기된 특정 라디오 프로그램을 겨냥한 비판글을 게재했다가 한 시간 만에 “계정 관리자의 실수”라며 삭제하면서 의혹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도장런” 반격하고 ‘동덕여대’로 탈출 모색
반면 이 의원 측은 허 전 대표의 대표직 상실을 정당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천하람 개혁신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2월 12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허 전 대표가 임명했던 당직자들을 해임하고 ‘당의 정상화’를 강조했다. 또 같은 날 허 전 대표로부터 아직까지 당대표 직인과 당 계좌 비밀번호 등을 반납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개혁신당판 옥새 파동’이다. 이 의원은 지난 2월 12일 방송에 출연해 “지난해 10월 허 전 대표가 직인을 본인이 수령해서 가져갔다. 도장을 개인이 보관하는 이유는 ‘도장런(run)’밖에 없다”며 “결정적인 순간 도장을 하나의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고 밝혔다. 이에 허 전 대표 측은 “어떤 형태로든 천하람·이준석 의원 측으로부터 당대표 직인 관련 사항에 대한 안내를 받은 적 없다”고 반박했다.
‘옥새 파동’은 개혁신당이 새 직인을 발급받으며 싱겁게 마무리됐지만, 허 전 대표에 대한 고소·고발도 이어졌다. 지난 2월 10일 당원소환 투표에 참여했던 ‘으뜸당원’(당비 납부 당원) 120명이 허 전 대표를 명예훼손, 모욕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지난 2월 19일에는 구혁모 개혁연구원 부원장이 허 전 대표를 사기,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으뜸당원들은 허 전 대표가 당원소환투표에 대해 ‘이준석 세력이 개혁신당을 사당화하기 위한 위헌·위법한 범죄행위’라고 비방해 투표에 참여한 으뜸당원 개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구 부원장은 “대표직 파면으로 개혁연구원 이사장직에서 면직된 허 전 대표가 법인인감과 법인인감카드를 무단으로 변경하고 이를 편취해 개혁연구원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갈등 봉합이 요원한 가운데 개혁신당의 진흙탕 싸움으로 조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 의원의 리더십과 이미지에는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허 전 대표가 당헌·당규상 정식 최고위와는 별개의 조직인 ‘임시 최고위원회의’를 정기적으로 열겠다고 밝힌 한편, 대선후보 릴레이 검증플랫폼 ‘엑스(X)’를 개설하고 이 의원을 첫 검증대상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엑스에서는 그간 논란이 됐던 이 의원 발언을 ‘비하’ ‘갈라치기’ ‘거짓말’ ‘혐오’ 등으로 분류하고 관련 제보를 받고 있다.
허 전 대표의 맹공에 정치적 위기 상황을 맞은 이 의원은 탈출 전략으로 다시 한번 ‘갈라치기’를 꺼내든 모습이다. 이 의원은 지난 2월 18일 동덕여대와 서울서부지법을 방문했다. 동덕여대 본관 점거 사태와 서울서부지법 소요 사태를 같은 선상에 두고 ‘폭력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젠더 이슈를 띄워 자신의 정치적 지기반인 ‘이대남(20대 남성)’ 결집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당내 갈등으로 타격을 입는 것은 이 의원이다. 대권 주자로 나서려면 시급히 당 내홍을 매듭지어야 한다”며 “지금 여대에 방문해 갈라치기와 분열을 보여주거나, 법적대응을 예고하는 것은 ‘가는 곳마다 분란을 일으킨다’는 비판적인 평가를 강화할 뿐”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의원의 장점은 뛰어난 정무감각과 높은 국민적 인지도인데, 인지도라는 장점은 한순간에 비호감도라는 단점으로 바뀌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당의 대주주로서 문제를 풀어가는 능력을 보여주면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