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의 한 주상복합단지 앞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자택으로 알려진 이곳에 시위대가 집결하면서다. 때마침 귀가하던 30대 초반 남성인 한 아파트 주민이 이들 앞을 지나갔다. 이 남성은 시위대가 막아선 인도를 지나가기 위해 손으로 피켓을 치우다가 시위대와 부딪혔다. 남성은 분노를 참다 혼잣말로 욕설을 했고 이를 들은 시위대들은 그의 멱살을 잡으며 몸싸움으로 번졌다. 시위대가 남성을 향해 “부모도 없냐. 공산당 민노총 같은 X”라고 소리를 지르며 밀쳐내자, 남성은 뒤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뒤이어 경찰이 도착해 남성을 달래며 상황을 정리했지만, 남성의 등 뒤로 시위대의 욕설은 멈추지 않았다.
“귀를 왜 막냐” 주민들 향해 욕설, 몸싸움도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은 지난 2월 17일부터 매일 문 권한대행의 자택으로 알려진 이 단지 앞에서 출퇴근 시간에 맞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문 권한대행이 불공정하게 진행한다는 주장을 펴며 그의 집 앞에 모이고 있다. 이들은 아파트 후문 인도를 점거, 확성기와 나팔을 사용하여 “야동판사 문형배는 사퇴하라” “문형배를 체포하라”고 외치는 중이다. 이들은 ‘편파탄핵 중단하라’ ‘부정선거 수사하라’ ‘음란판사 문형배’ 등이 적힌 피켓과 태극기도 연신 흔들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자”고 촉구한다. 이들의 시위 탓에 아파트 주변 상가는 매일 아침저녁마다 굉음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양옆으로 자리한 시위대는 축구 경기장에서 사용할 법한 소음기와 나팔을 불어대고 있어 소음 정도가 심각했다. 집회 장소로 지정이 되지 않은 맞은편 대형병원 앞에서도 시위대는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주민은 지속적으로 마찰을 겪고 있다. 2월 18일 오후 6시경 퇴근 시간이 맞물리면서 행인들과 시위대의 동선이 겹치자 언쟁이 발생했다. 한 주민이 시위대를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친 뒤 지나가자, 시위대 일부가 “저 놈 잡아라”며 쫓아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뒤이어 또 다른 주민이 시위대에 접근해 항의하자 시위대는 “나라가 위기에 빠졌는데 당신들 잠자리가 문제냐”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행인들을 향해 위협적인 행동을 취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한 주민이 눈살을 찌푸린 채 시위대 옆을 지나가자 한 윤 대통령 지지자는 “얼굴 펴라. 뭐가 불만이냐. 이리 와봐라”라고 소리쳤고 “XXX, 죽여버릴까”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아이 손을 잡고 귀를 막은 채 지나가는 한 여성을 향해서도 “귀를 왜 막냐”고 언성을 높였다.
문 권한대행 거주 여부도 불분명
문제는 이 아파트가 문 권한대행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문형배는 이곳에 안 산다”고 말하고 있다. 한 주민이 시위대에게 다가와 “문형배는 한 달 전에 이사갔다”고 말했으나, 시위대는 “알았으니 가던 길이나 가라”며 무시한 채 시위를 지속했다. 또 다른 아파트 주민은 “정치와 진영을 떠나 해도해도 너무한 것 같다”며 “이 집회 때문에 아파트에 거주 중인 윤 대통령 지지자들도 등을 돌릴 판이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 행인은 “갑자기 큰소리가 나서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며 “민원을 넣고 신고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시위대 측에 항의하러 나온 한 60대 여성은 “아파트 관리동에 물었더니 문형배 판사는 우리 아파트 주민이 아니라고 했다”며 “직접 주민 명단 엑셀로 조회를 했는데 ‘문형배’라는 이름은 안 나왔다”고 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 역시 “(문 권한대행이)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시위대 측은 “문형배가 이사 갔다는 말은 다 가짜뉴스”라며 “이사를 간 것이 맞으면 경찰들이 이곳을 왜 지키겠나. 다 우리를 방해하려는 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시위대 측이 주장한 문 권한대행의 주소로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봐도 문 권한대행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 문 권한대행 관련 시위를 주도한 부정선거부패방지대(부방대) 측은 “문형배를 압박하는 이번 집회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방대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부정선거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설립한 단체로, 윤 대통령 탄핵 반대 관련 각종 집회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23년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과 만나 부정선거 관련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다. 부방대 관계자는 “이런 방식의 시위는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고 현재도 그 효과를 느끼고 있다”며 “주변 주민들과 가족들까지 공격을 받으니 스스로도 압박을 느낄 것이고, 실제로 문형배를 태운 헌재 관용차량이 입구를 통과하지 못 하고 도망갔다”고 말했다.
당과 공식적인 관련이 없긴 하지만 여권 지지자들로 분류되는 이들의 시위 방식에 국민의힘에서는 당혹스러움이 묻어나고 있다. 이번 시위에 관련한 입장을 묻자 국민의힘 대변인단 측은 “집 앞까지 찾아가서 시위를 하게 되면 문 권한대행 이외에도 인근 지역 전체가 피해를 본다”며 “가족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에 자제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여당 의원들이 참여한 것에 대해선 “사법부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당내 공감대가 형성됐고, 78명의 의원들이 모여 소추안 발의 준비 중이다”라고 전했다. 국민의힘 A 의원실 관계자 또한 “공수처와 서부지법을 비롯해 헌법재판소에 이르기까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국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며 “앞으로의 탄핵심판 과정을 지켜보며 더 이상의 불공정함이 없도록 촉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 전문가들은 “참여자들의 목적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시위 목적이 윤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회입법조사처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문위원이었던 엄기홍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위 현장에서 유튜브 개인 방송을 켜고 후원금을 받는 등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탄핵 찬반 집회가 서로 경쟁하며 규모가 커지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일수록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여론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실질 증거에만 입각하여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승진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문 권한대행 관련) 집회는 표출 방식이나 피해의 정도에 있어서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며 “탄핵 반대 집회가 헌법재판소 판결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집회와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는 것이 맞지만 그 한계 역시 명확히 정해질 필요가 있다”면서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