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정상회담이 파행으로 끝나면서 우리 정치권에서 핵(核)무장 논의를 공론화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거세지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갈수록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확장 억제) 공약이라는 ‘동맹의 선의(善意)’에만 언제까지나 의존할 순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2일 페이스북 글에서 “70년간 굳건히 다져온 한미 동맹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며 “핵무장은 단순한 군사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라고 했다. 이어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국가는, 결국 강대국의 흥정판에 언제든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라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우크라이나가 핵 포기 대가로 안전 보장을 약속받고도 2014년 러시아로부터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당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우리도 북핵 협상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한계 상황에 와 있다. 두 눈 부릅뜨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홍 시장은 지난 1월 미국을 방문해 “남은 건 남북 핵 균형 정책을 현실화시켜 우리가 북핵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길밖에 없다”고 했었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주 안보 포럼에서 “트럼프 2기가 북한과의 핵 협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스스로 억지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며 “한국도 최소한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을 확보해 우리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선택지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한미 원자력 협정에 의해 제한받는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보해 필요시 바로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자는 것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당대표 시절 “농축·재처리 기술 확보를 포함한 유연한 발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간 핵무장 논의를 금기시해왔던 야권에서도 핵무장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7일 “이제는 우리(민주당)가 핵무장에 대해 얘기를 할 때가 됐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독자 핵 개발까지는 아니더라도 ‘핵 역량’ 확보 논의 자체는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위성락 의원은 지난달 28일 “최근 핵무장이나 핵 잠재력에 대한 논의의 한 자락이 우리 당으로도 들어와 있다. 어떻게든 담론을 잘 만들어서 (정책) 방향을 정립해야 하는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