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 당시 국군방첩사령부 소속 대령이 검찰·국가정보원 관계자와 여러 차례 통화한 후 대검찰청 소속 검사가 선관위로 출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해당 대령이 방첩사 내부의 과학수사센터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방첩사 과학수사센터는 개정한 대통령령에 따라 외부기관에 부정선거 관련 수사를 지원·요청할 수 있는 부서다. 검찰 및 국정원과 통화한 방첩사 인사가 부정선거를 수사할 수 있는 부서의 ‘장’이란 사실이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방첩사 대령과 통화한 대검과 국정원 관계자 역시 해당 기관에서 각각 부정선거 수사 관련 부서에 있던 인물이다. 따라서 ‘방첩사 대령과의 통화가 사적인 연락에 불과했고, 계엄 개입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대검과 국정원 측의 해명과 달리, 세 기관이 중앙선관위 서버 확보 관련해 공조를 위해 통화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가능한 대목이다.
주간조선 취재 결과, 계엄 당시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선임과장·국정원 ‘과학대응처’ 처장과 여러 차례 통화했다고 알려진 대령은 송제영 방첩사 과학수사센터장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과 국정원의 계엄 개입 의혹에 대해 수사가 필요하다”며 대검찰청 소속 검사가 계엄 당시 방첩사 대령과 통화하고 선관위로 출동했다는 내용의 제보를 공개했다. 민주당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3일 자정이 지난 시각에 송 대령과 통화를 잇달아 주고받은 인물이 사이버 전문가인 대검 과학수사부 선임과장과 국정원 과학대응처 처장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5일 오후에도 추가로 두 차례씩 더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첩사 디지털포렌식 수사 책임자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방첩사로부터 제출받은 디지털포렌식 수사 규정에 따르면, 방첩사에는 별도의 과학수사센터가 마련돼 있다. 이 과학수사센터의 ‘장’은 수사 또는 공소유지를 위해 다른 수사기관에 디지털포렌식 수사에 필요한 인원·장비·시설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송 대령은 2023년 12월 방첩사가 국방기관 최초 디지털포렌식 분야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받았던 당시에도 방첩사 과학수사실장을 맡고 있던 인물이다. 국내에서 디지털포렌식 분야 국제공인시험기관 인정을 받은 기관에는 대검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가 있다.
앞서 송 대령은 계엄 당시 정성우 방첩사 1처장으로부터 ‘선관위 서버를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으며 ‘검찰·국정원 등 전문가 그룹이 올 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검찰에 진술한 바 있다. 송 대령이 방첩사 내부 디지털포렌식 수사 분야의 책임자였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방첩사가 대검 및 국정원과의 통화에서 선관위 서버에 대한 자문을 받거나 수사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졌다. 송 대령과의 통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대검과 국정원은 “사적인 연락에 불과했고, 계엄 개입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대검은 “해당 과장은 평소 친분이 있는 방첩사 대령이 걱정돼 사적으로 먼저 전화를 해 어떤 상황인지와 함께 안부를 물었고, 상황이 종료돼 귀가한 후 다시 전화로 건강을 잘 챙기라고 당부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방첩사 대령이 국정원 직원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단순 문의하는 개인적인 통화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수사센터, 디지털 수사 지원·요청 가능
과학수사센터장은 방첩사 내 디지털포렌식 수사 전문 인원과 시설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과학수사센터에는 24시간 감시, 통제되는 디지털포렌식 시설이 있다. 이 포렌식 시설은 분석시설과 부수시설로 나뉘는데, 분석시설에는 디지털포렌식(디스크, 모바일,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등) 분석실과 물리복구실도 포함돼 있다. 부수시설에는 독립망 운용 및 디지털 증거 관리를 하는 서버실과 디지털포렌식 장비실, 교육실이 존재한다. 디지털포렌식 수사관은 과학수사센터장이 방첩사령관에 제청하여 임명한다. 이 수사관은 디지털포렌식 관련 자격증을 소지해야 하고, 2년 이상 방첩수사 등 관련 업무를 수행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이외에도 관련 전문 인원에는 포렌식수사과장, 포렌식수사통제장교, 포렌식수사통제관 등이 있다.
이 같은 독립적 수사 능력을 바탕으로 방첩사는 다른 수사기관의 디지털수사를 지원할 수도 있다. 내부 규정에 따르면 다른 수사기관이 디지털포렌식 수사에 필요한 인원, 장비 등을 요청할 경우 방첩사 과학수사센터 포렌식 수사과는 자료를 받아 수사를 지원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디지털 증거를 관리하는 내용도 세세하게 규정으로 정하고 있다.
앞서 주간조선이 단독 보도한 ‘尹, 방첩사 방문 후 부정선거 수사 가능하게끔 대통령령 개정(2838호 참고)’ 기사 등에 따르면, 2023년 방첩사가 ‘부정선거’ 의혹 등 사이버 수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대통령령이 개정됐다. 이 대통령령 개정령에서 방첩사의 수사 지원 범위에 개념이 모호한 ‘사이버 테러’가 추가됐고, 방첩 지원업무는 ‘정보작전’ 방호태세에서 ‘사이버’ 방호태세로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