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로 18년 만에 3차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에서 “기금 고갈 시점만 9년 늦췄을 뿐 미래·청년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긴 방안”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한 연금 모수(母數) 개혁안이 기금의 지속 가능성 확보 측면에서 미흡한 탓에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몫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모수 개혁으로 27년 만에 보험료율(내는 돈 비율)을 9%에서 13%로 올리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라며 “다만 미래 세대 부담 증가 등은 조만간 설치될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 구조 개혁 등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청년들이 주도하는 연금 개혁 단체인 ‘연금 개혁 청년 행동’ 소속 회원들은 2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재 9%의 두 배인 18%로 올리더라도 연금은 여전히 적자 구조인데, 그 와중에 소득 대체율(받는 돈 비율)을 유지하거나 줄이진 못할망정 40%에서 43%로 인상한 것은 개악(改惡)”이라고 했다. 이들은 이번 연금 개혁안에 포함된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에 대해서도 “수천조 원의 부채를 세금으로 보전하겠다는 뜻”이라며 “결국 미래에 국민연금 부채를 갚기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은 미래 세대”라고 했다.

◇“청년들에 미안한 마음” “구조개혁 같이 했어야” 정치권도 자성 목소리

정치권에서도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연금 개혁안에 대한 자성과 함께 추가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과의 협상에서 왜 기성세대 이익만 챙기려 하고 미래 세대에게 아픔을 주려고 하냐고 수없이 부르짖고 사자후를 토했지만, 민주당이 완강히 거부했다”며 “미래 세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이번 개혁이) 임시변통은 되겠지만 국민연금의 만성적인 적자 구조는 해결되지 않고 조금 더 어린 세대에게 다시 전가될 뿐”이라며 “국민연금 개혁은 미래 세대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연금 모수 개혁안에는 ‘보험료율 13%, 소득 대체율 43%’ ‘국가 지급 보장 명문화’ ‘군 복무·출산 크레디트(국민연금 가입 기간 인정) 확대’ ‘저소득 지역 가입자 보험료 지원 확대’ 등이 담겼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도부가 어렵게 합의한 안이었지만, 표결 결과 여야 의원 84명이 기권·반대표를 던졌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기권·반대가 56표 나왔다. 국민의힘 의원(108명) 절반 이상이 이번 연금 개혁안에 대해 반대나 우려 의사를 표결로 밝힌 것이다. 정치권에선 “추가적인 구조 개혁을 통해 ‘더 내고 더 받는’ 이번 연금 개혁안이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기권표를 던진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이번 개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돼야 한다”며 “경제·인구 변화에 따라 수급액을 조절하는 ‘자동 조정 장치’도 반드시 도입해야 하며 기초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확대하여 국민연금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손해 보면 안 된다”며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기자회견에서 “구조 개혁 없는 모수 조정은 미래 세대 착취 야합”이라며 “연금 자동 조정 장치, 신구 연금 분리, 세대별 형평성을 강화할 수 있는 각종 제도적 장치 등이 도입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지사는 라디오에서 “구조 개혁을 같이 봤어야 한다”며 “미래 세대에게 더 많은 부담을 떠넘기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여야가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향의 구조 개혁안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을 기초·퇴직·개인연금과 연계해 다층적 소득 보장 체계를 짜는 구조 개혁을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김학주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금 적자를 미래 세대의 세금으로 메우지 않도록 하려면 자동 조정 장치를 최우선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