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만료를 세 달여 앞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취임 초기부터 ‘윤석열 사단’의 막내 검사로 알려져 실세 원장으로 불렸던 그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미묘하게 결이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지난해 12월 12일 “탄핵이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 경제에 낫다”고 언급하며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후 윤 대통령 측이 반대한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한 최상목 권한대행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고, 윤 대통령의 체포 불응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한편, 야당 주도로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찬성 입장을 밝히며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윤 대통령 강경 지지층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일부는 “한동훈과 같은 길을 가려는 것 아니냐”며 이 원장을 ‘배신자’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도 그의 속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임기 막바지 김 여사 수사로 여권과 충돌하며 ‘총장 패싱’ 논란에 휘말린 이원석 전 검찰총장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시각도 있다.
한동훈, 이원석, 그리고 이복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원석 전 검찰총장을 차례로 ‘떠나보냈다’. 두 사람은 대통령이 검찰 시절부터 함께하며 신뢰하던 최측근 후배들로 평가받았다.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는 200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팀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수사팀, 2017년 서울중앙지검을 거치며 20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다. 이 전 총장 역시 2007년 삼성 비자금 의혹 수사와 국정농단 사건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윤석열 사단의 브레인’으로 불렸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인선 과정에서 전임 김오수 총장(20기)에서 7기수를 뛰어넘는 인사를 단행한 것도 이 전 총장에 대한 두터운 신임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의 관계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총선 기간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을 둘러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거취 문제 등에 대해 ‘국민 눈높이’를 언급하며 용산과 충돌했고, 결국 ‘윤·한 갈등’으로 번졌다. 이 전 총장 역시 김 여사 명품백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사건 처리 과정에서 ‘법불아귀(法不阿貴)’를 강조하며 원칙론을 내세웠지만, 용산과 마찰을 빚으며 ‘총장 패싱’ 논란에 휘말렸다. 연수원 동기로 가깝던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친윤계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정치적 플레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그리고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지금, 친윤계는 윤 대통령과 멀어지는 이복현 금감원장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를 재조사하며 전 정권을 겨냥하고,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 “한 톨의 증거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며 현 정권을 옹호하던 그가 지난 3월 5일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100억원대 이상의 이익 실현이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앞서 관련 보도가 나왔으니 부인하기 어렵다”고 부연했지만, 이 원장의 발언은 ‘김건희 특검’을 추진 중인 민주당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의도적으로 삼부토건 관련 조사 정보를 ‘리킹(정보 누설)’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왔다.
더욱이 이 원장은 최근 야당 주도로 국회 문턱을 넘은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여권과 각을 세우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 3월 13일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가능성에“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뒤 여권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검사 때 습관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고, 윤한홍 정무위원장은 “금감원장은 업무를 직접 핸들링한 라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 원장은 지난 3월 19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여권의 질타를 이렇게 받아쳤다. “최종 결정권이 없다는 점에서는 다 원오브뎀(One of them)이고, 다 ‘N분의1’의 의견을 내는 것인데, 금융감독원만 의견을 내라 마라 이런 것들은 솔직히 말하면 그 자체가 월권 아닌가.”
배신설, 정치 입문설, 레임덕 탈출구설…
이 원장은 당초 상법 개정을 지지하다 지난해 말 정부 내에서 ‘상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라는 입장이 정리되자 선회한 바 있다. 때문에 그가 당초 지지했던 상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에 반대 입장을 보이는 것은 크게 논란이 될 만한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그는 상법 개정안이 충분한 논의 없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데 대해서는 지난 3월 5일에는 “디테일을 따져서 제도를 설계해야 되는데 법사위에서 ‘후다닥’ 법안이 통과될 때 충분히 논의했는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었다. 금융감독당국 수장으로서 상법 개정에 대한 소신이 드러나는 발언이다. 그러나 결국 상법 개정안을 추진한 야당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은 계엄 사태 이후 미묘하게 바뀐 이 원장의 언행과 함께 언급되며 여러 설을 낳았다.
우선 윤 대통령 강경 지지층 사이에서 언급되는 것은 ‘배신설’이다. 앞서 이원석 전 총장 때 언급됐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정치적 플레이’ 관측과 비슷하다. 다만 이번에는 조기 대선 가능성과 맞물려 “이 원장이 정치 입문을 노린다”는 이야기가 함께 나왔다. 상법 개정안으로 여권과 대립하며 스스로 사퇴할 명분을 만들고, 사퇴 후 한 전 대표와 손을 잡고 정치 입문을 노릴 것이란 시나리오다. 이는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과 커뮤니티 등을 통해 번졌다. 이 원장이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한국경제인협회에 공개 토론을 제안하는 등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점, 남은 임기 동안 지방은행 본점을 방문하는 ‘지방순회’를 한다는 점 등이 근거로 꼽힌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과 가까운 한 전직 검사는 “이 원장이 탄핵 정국에서 윤 대통령에게 완전히 등 돌리고 민주당 쪽으로 향했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삼부토건과 관련해서는 김 여사 관련설을 내세우려다 윤 대통령이 석방되는 바람에 타이밍이 어긋났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풍문을 전했다. 다만 이 원장의 정치 입문설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다음 스텝이 애매하다. 개인적으로 선거에 나서야 하는 선출직이나 청문회가 필요한 자리는 원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앞서 (신설이 검토 된)법률수석, OECD 대사 이야기가 나왔던 것처럼 임명직 자리를 원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한 전 대표와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치 행보를 함께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금감원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 탄핵 정국 속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원장이 스스로 ‘레임덕’을 막기 위해 여러 사안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데드덕’ 이야기가 나오지만 절대 직을 던질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임기가 세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출장, 지방순회 일정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이미 이전에 (금감원장) 교체 이야기가 나왔다. 윤 대통령 직무정지로 이 원장이 수혜를 본 것”이라며 “임기 말까지 그립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지금 같은 행보(상법 개정안 거부권 저지를 위한 대외 행보)를 보이는 것 같다. (3월 19일) 상법 개정안 보도 참고자료만 봐도 모두가 아는 내용을 또 설명하고 있지 않나. 상법 개정안 이슈로 금감원장으로서 스피커가 작동되는 동안 외부로 목소리를 내는 한편, 내부로는 직원들을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