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한국외대 등 한국대학총학생회공동포럼 대학생들이 지난 3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국민연금 개혁 대응 전국대학총학생회 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20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내부에선 청년들 중심으로 “당론이라서 그렇지 솔직히 말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20대 비서관은 “2030 청년들이 이번 국민연금 개정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분노에 가깝다”며 “싱싱한 돈을 빼앗아서 늙은 돈으로 돌려주겠다고 하는 꼴”이라고 했다. 그는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0.72명인데 국민연금 재정 추계는 장기적으로 출산율이 1.2 수준을 회복한다는 가정에 기반했다. 실제 고갈 시점은 훨씬 당겨질 수 있다”며 “덜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은 애초에 지속 불가능한 구조였기 때문에 앞으로 더 극렬한 세대 갈등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8년 만의 연금개혁은 기금 고갈 시기를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 늦출 뿐이었다.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3%로 높였지만,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60%에서 40%로 어렵게 내린 소득대체율은 43%로 다시 올렸다. 현재 41.5%인 소득대체율은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로 줄어들 계획이었다. 소득대체율 40%를 적자 없이 지급하기 위한 ‘수지균형 보험료율’은 19.8%로, 이번에 인상한 보험료율 13%와도 차이가 크다. 그런데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리면서 수지균형 보험료율은 21.2%가 됐다.

“20대에게 연금은 추가 과세”

여야가 합의한 개정안임에도 본회의에서 반대 혹은 기권표를 던진 의원은 84명에 달한다. 여야의 3040세대 의원들은 연금개혁안에 대해 공동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3월 23일 국민의힘 소속 김재섭·김용태·우재준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소영·전용기·장철민 의원, 개혁신당 이주영·천하람 의원 등 8명은 “당장의 보험금 혜택을 인상하고 후세대의 보험료율을 올리겠다는 것”이라며 “강화된 혜택은 기성세대부터 누리면서 부담은 다시 미래세대의 몫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연금특위가 30·40대 위주로 구성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청년들의 관심은 기금 고갈 이후에 쏠려 있다. ‘낸 만큼은 받을 수 있을까’라는 우려는 제도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민주당은 지급 보장을 명문화했기 때문에 미래 세대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당원 이모(22)씨는 “연금개혁으로 기금 소진 시점을 미뤘다는데 제 수급 연령까지 오지도 않는다”며 “받지도 못하는 돈을 국민연금이라는 이름으로 가져가버리는 건 20대에게만 추가 과세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고려대, 서강대, 연세대 등 9개 대학 총학생회로 구성된 한국대학총학생회공동포럼은 지난 3월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30 청년 세대에게 더 큰 부담을 주고, 기성세대에게 혜택을 집중시키는 구조로 개편됐다”며 “이미 연금에 대한 청년세대의 불신이 큰 상황에서 이를 심화시키고, 세대 간의 불균형을 더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바른청년연합, 자유시민교육, 한국청년입법연구회 등의 청년단체들이 모인 ‘연금개혁청년행동’은 국민연금 개정안이 “기금 고갈 시기만 늦출 뿐 미래세대를 착취하여 연금을 나눠 가지자는 점에서는 기존과 전혀 다름없다”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연금개혁에 대한 세대 간 온도차가 드러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3월 22~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20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된 연금개혁안에 대한 30대 이하 찬성률은 30%에 불과했다. 30대 이하에서 반대 여론은 절반을 넘었다. 18~29세에서는 29.1%만이 찬성했고, 52.9%는 반대했다. 30대에서도 찬성 32.7%, 반대 56.9%였다. 전체 응답자 중 찬성 의견은 50.0%, 반대 의견은 35.9%인 것과 차이가 크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동안의 연금개혁 논의는 ‘지속 가능성’과 ‘노후 소득 보장’ 사이의 줄다리기였다. 다시 말해 보수와 진보로 입장이 갈리는 의제였다. 보수 진영은 기금의 지속 가능성을 강조하며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진보 진영은 지금의 소득대체율로는 노후 소득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1대 국회 막바지에 연금개혁이 최종 결렬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에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하면서 연금을 둘러싼 ‘세대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에 참여했던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연금개혁의 권한은 기성세대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안 하면 다음 세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며 “기금 고갈 이후의 세대는 보험료율을 30% 넘게 내야 하기 때문에 미래에 노인층이 될 지금의 청년층을 더 크게 미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금 제도를 둘러싼 세대 갈등은 지금보다 앞으로 더 격화되며, 세대를 거쳐 반복된다는 의미다.

청년 아닌 86세대를 위한 개혁?

2023년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보험료율을 12%로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30%로 낮춰도 2070년에 기금이 소진되며, 이때 부과방식 보험료율은 26.5%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부과방식 보험료율은 그해 연금수급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한 금액을 그해 가입자들에게 보험료를 걷어서 충당한다고 했을 때의 보험료율을 말한다. 이번 모수개혁으로 적립금이 고갈된 시점에 수급 연령이 되는 1999년생은 당대의 청년 세대를 ‘착취’해야만 43%의 소득대체율을 보장받을 수 있다. 지금의 청년들이 미래에 연금을 받으려면 ‘세대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연금연구회를 이끄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이번 연금 개편의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나뉜다고 말했다. “연장된 기금 소진 시점인 2064년은 50세 이상 연령층이 사망할 때까지 안심하고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다. 기존의 연금 제도에선 2078년 기준 부과방식 보험료율이 35%였는데 이번 개편안으로 인해 38%로 올랐다. 기금이 소진된 이후의 후세대 부담은 더 커지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청년층의 부담을 더는 게 아니라 86세대의 연금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변질됐다. 캐나다는 보험료율 11.9%를 부담하는데 소득대체율은 33%다. 노르웨이는 보험료율 18.1%에 소득대체율 42%다. 우리보다 많이 내고, 적게 받는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연금개혁이 드러낸 세대 갈등은 단순히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의 갈등이 아니라 기득권인 86세대와 다음 세대의 갈등”이라며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연금 외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세대 간의 갈등이 굉장히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기성세대가 조금이라도 부담을 나누는 방식이어야 청년들을 조금이라도 설득할 수 있었는데 너무 무책임하게 개혁을 추진했다”며 “국민연금의 숫자를 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얘기하길 꺼리는 기초연금의 ‘선별 복지’까지 건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에 쏠린 정치인들의 눈

지난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이 결렬된 이후 지난해 9월 정부가 단일안을 내놨지만 정치권에서 연금개혁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연금개혁안이 통과됐다. 한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이번 국민연금 개정안에는 이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지지층에게 가장 큰 수혜가 돌아가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특위를 구성하고 구조개혁을 반영하기 위해선 민주당의 결단이 필요한데 그럴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25일 국회는 여야 의원 13명으로 한 연금특위를 구성했다. 국민의힘은 자당 소속 연금특위 위원 5명 중 3명을 30대 의원으로 배치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민연금 개정안에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한 김재섭·김용태·우재준 의원이 모두 포함됐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연금특위에 들어간 30대 의원이 모경종 의원뿐이었다. 연금개혁 비판 기자회견을 한 민주당 의원들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으며, 40대인 강선우·김남희 의원이 들어갔다. 연금개혁 논의에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이유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연금개혁은 세대 갈등을 비롯한 다양한 축에 걸쳐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미세 조정이 필요한데 조기대선을 앞두고 마치 전리품처럼 쓰인 측면이 있다”며 “어지러운 국면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데로 쏠리다 보니 디테일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국민연금 개정안에 합의한 배경을 두고는 “민주당에 핵심 어젠다에 대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정치적 반응이지 고뇌에 찬 결단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년들 사이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여권 잠룡들도 연금 이슈에 가세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서 “‘내는 돈’은 8년간 천천히, ‘받는 돈’은 즉시 올렸다. 바로 연금을 더 받는 86세대는 꿀을 빨고, 올라간 돈을 수십 년 동안 내야 연금을 받는 청년세대는 독박을 쓰는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 후 연금개혁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도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전 대표 측 관계자에 따르면 한 전 대표가 생각하는 연금개혁의 밑그림은 크게 두 가지다. 보험료율 세대별 차등 인상과 최소한의 구조개혁인 ‘자동조정장치’ 도입이다. 이는 지난 9월 정부가 발표한 단일안에 담긴 내용이기도 하다. 복지부는 50대는 4년, 20대는 16년에 걸쳐 보험료율을 13%까지 세대별로 차등 인상하는 안을 내놨다. 50대는 1%포인트, 40대는 0.5%포인트, 30대는 0.33%포인트, 20대는 0.25%포인트씩 매년 높아지는 방식이다. 수급액에 기대여명 또는 가입자 수 증감을 연동해 연금 인상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4개국이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지도부가 합의한 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여당 연금특위 위원장을 맡다가 이번 개정안에 항의하기 위해 사퇴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연금특위에 전권을 주고 개정안이 시행되는 내년 1월 1일 전까지 구조개혁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며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거나 43%로 올리더라도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야 하며, 소득대체율도 보험료율처럼 단계적으로 올리고, 정부의 지급 보증 의무를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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