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청이 지난해부터 대장동 개발 의혹을 조사해달라는 민원을 수차례 묵살했던 것으로 12일 나타났다. 화천대유의 지분 구조, 배당금 배분 방식에 대한 입주민들 조사 요구에도 “이 사업은 적법하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경이 수사에 착수하자 성남시청은 민원이 접수된 지 10개월 만인 이날 “민간 업자들의 대장동 폭리에 대응할 것”이라며 대책 회의를 열었다. 이 같은 태세 전환에 대장동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성남시청이 배임 혐의에서 벗어나려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대장동 입주민은 성남시청에 제출한 민원서에서 화천대유의 지분 구조, 과다한 개발 이익, 수상한 회계 자료 문제를 고발했다. 화천대유가 낮은 지분율에 반해 지나치게 많은 개발이익금을 가져가는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민원인은 화천대유 재무상태표·손익계산서 등의 증빙 자료까지 제시하면서 “화천대유에 대한 조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당시 제기된 의혹은 현재 검찰과 경찰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장동 개발 방식에 대한 민원은 올해 1월에도 접수됐다. 여기에서는 ‘성남시가 확정 개발이익금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이 포함됐다. 다른 신도시에서는 기부 채납되는 기반 시설·도로에 대해서 따로 ‘확정 개발이익금’이라고 지칭하지 않는데 유독 성남시만 공익 환수로 포장한다는 지적이었다.
이 같은 거듭된 민원 제기에도 성남시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지난해 12월 성남시청 도시균형발전과는 민원이 접수된 지 일주일 만에 “성남의뜰과 화천대유는 상법(商法)상 서로 다른 개별 법인이며 적법하게 외부 감사를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화천대유 측의 과도한 개발 이익, 배당금 배분에 대해선 “적법하게 작성된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관련 규정에 따라 회사 주주에게 배당된 사항”이라고만 했다. 올해 1월에 제기된 민원에도 성남시 측은 “이 사업으로 인한 주민 불편 사항이 최소화되도록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할 계획”이라며 원론적으로 대답했다.
“적법하다”던 성남시 답변과 대조적으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구속영장에는 뇌물·배임 혐의가 구체적으로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화천대유 인사들이 가족·친척 명의로 천문학적인 배당금을 타내거나,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간 업체의 초과이익환수 조항을 삭제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구속된 유씨가 독자적인 판단만으로 대장동 사업 설계에 나섰는지, 이 과정에서 ‘결재권자’의 지시가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규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임 혐의에 대한 수사망이 좁혀지자 경기도·성남시청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경기도는 지난 6일 “민간 업체의 추가 이익금 배당을 중단하고 개발 이익 전액을 환수하라”는 공문을 성남시·성남도시개발공사에 내려보냈다. 성남시청 또한 이날 대책 회의를 열어 부당 이득 환수를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 대장동 주민들의 민원 해소, 대장동 특혜·로비 의혹 관계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대장동 개발 사업에 문제가 없다는 기존 입장을 스스로 번복한 셈이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경기도가 부당 이익을 환수하라고 요청한 데 따라 대책 회의도 열게 된 것”이라면서 “대장동 입주민들에게 피해가 덜 가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민원을 제기한 대장동 입주 예정자는 “대장동 개발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던 성남시청이 이제 와서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꼬리 자르기’ 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