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20일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직후 벌어진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와 관련해 “대법관들은 30년 이상 법관 생활을 하면서 미증유의 사태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천 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법관 개인, 법원 재판에 대한 테러 시도는 법치주의 전면 부정일 뿐만 아니라 모든 헌법기관 전체에 대한 부정행위”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대법관 회의서 “법치 무시, 국가 존립할 수 없다” 우려
천 처장은 이날 법사위 현안질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주재로 이날 오전 대법원에서 열린 긴급 대법관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소개했다. 대법관들은 서부지법 난동 사태와 관련해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극단적 행위가 일상화될 경우 우리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 “불법적인 난입·폭력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체 헌법 기관 종사자들이 한목소리로 이야기해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천 처장은 전했다.
천 처장은 “영장 하나가 모든 재판 전체를 결정하는 것처럼 중차대한 부담을 영장 판사 개인에게 지우고, 국민에게 그렇게 이해되는 사법 시스템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천 처장은 “현재 국회에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거주지 제한 등 일정한 조건을 달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도록 하는 것)가 발의돼 있는데, 저희도 입법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대법관 회의에서) 나왔다”고 했다.
김석우 법무장관 직무대행도 법사위 현안질의에서 서부지법 난동 사태를 “법치주의와 사법 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규정하고, “원인이야 어찌 됐든 이런 일(법원 난동)이 벌어지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 대행은 이번 사태를 ‘폭동’이라 할 수 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 질의에 “기본적으로 대검에서는 불법 폭력 점거 시위(라고 본다)”라고 했다.
◇”尹 지지자, 7층 영장판사실 의도적 파손 흔적”
법원행정처가 이날 민주당 서영교 의원에게 제출한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일 새벽 3시 7분쯤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접한 지지자들이 서부지법 내부로 밀고 들어왔다. 이들은 경찰로부터 빼앗은 방패와 소화기 등으로 법원 유리창을 깨면서 영장 발부 판사를 찾으러 다녔다. 천 처장은 법사위 현안질의에서 “7층 판사실 중에서 유독 영장판사 방만 의도적으로 파손되고 그 안에 들어간 흔적이 있었다”면서 “미리 (영장 판사 사무실) 알고 오지 않았나 추측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날 당직 판사를 맡아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부장판사 사무실은 7층이 아닌 9층에 있었고, 차 부장은 군중이 법원 청사 안으로 난입하기 전에 이미 퇴근한 상태였다.
흥분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청사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법원 직원들은 1층에서 음료수 자판기로 출입문을 막았다. 그럼에도 현관이 뚫리자 직원들은 옥상으로 대피해, 출입문을 의자로 막고 군중 난입에 대비했다고 한다.
경찰이 법원 청사 내부로 진입해서 난동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한 시점은 오전 3시 32분. 법원 직원들은 청사에 난입한 시대위가 물러나자 2차 난입에 대비해 지하 설비실로 이동해 전력 차단을 준비한 것으로 파악됐다. 군중 난입으로 서부지법이 입은 피해는 외벽 마감재, 유리창, 셔터, 출입 통제 시스템, 컴퓨터 모니터, 책상 집기·조형 미술작품 파손 등이다. 천 처장은 “시설 등 물적 피해는 6억~7억원 정도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손해배상 청구 여부와 관련한 질의에 천 처장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철저한 추궁이 필요하다는 여러 대법관의 말씀이 있었다”고 했다.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선 경찰 대응이 안일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부지법 난입 사태 직전인 19일 새벽 3시쯤 윤 대통령 지지 집회 참가자 규모는 1300명이었고, 이 지역에 배치된 경찰 기동대는 900명가량이었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충분한 인력을 배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현장 지휘관들은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송원영 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과장은 “현재 보수 유튜버 세력 등에 대해 배후 수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