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외신 인터뷰에서 일본의 국방력 강화에 대해 “현재 한일 관계가 적대적이지 않으므로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대표는 또 일본과의 관계 심화와 한·미·일 협력에 대해서도 “현재의 지정학적 현실을 고려해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이 대표가 얼마 전까지 일본에 대해 ‘적성국’ ‘자위대 군홧발’ 등의 용어를 쓰며 적대적 발언을 쏟아냈던 것에서 180도 달라진 것이다. 정치권에선 “조기 대선 가능성이 생기고 외교가에서 이 대표의 외교·안보관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변신을 꾀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지난 1일 공개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실용주의가 민주당의 핵심 가치”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는 작년 3월 대만해협 문제와 관련해 “왜 중국에 집적거리나. 그냥 ‘셰셰’ 하면 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선 “한국 외교는 실용적이어야 하고, 우리 국익을 해칠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자위대 군홧발” 말했던 李 “日 국방력 강화, 위협 안 돼”
이 대표는 또 북한과 관련해선 한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미국과의 동맹, 일본과의 안보 협력 확대를 언급하며 “우리는 이미 북한을 억제할 만큼 군사적으로 충분히 강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소통과 참여를 통해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미국·일본을 향해 줄곧 우호적 입장을 내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대권을 노리며 외교·안보 노선을 틀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 대표가 과거 한·미·일 훈련 등 안보 협력을 비난한 적이 있고, 특히 일본을 향해선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반일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6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과 관련해 “일본이 군사 대국화를 지향하고 팽창주의를 지속한다면 첫 번째 희생양은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일본이 군사적으로 적성(敵性)을 완전히 해소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표로 취임한 뒤인 2022년 10월에도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비난하며 “일본을 끌어들여 훈련하면 일본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 욱일기가 한반도에 다시 걸리는 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 “한·미·일 연합훈련을 핑계로 자위대의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또 2023년에는 한일 정상회담과 강제 징용 배상 문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방류 논란 등과 관련해 “부당한 역사 침략에 대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전면전을 선포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오염 처리수 방류에 대해선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는 제2의 태평양 전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1일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한·미·일 협력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하고, 대일 관계 개선과 일본의 국방력 강화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며 일본에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 이 대표는 “일본을 한때 ‘한국을 침략하고 끔찍한 인권 침해를 저질렀으며, 이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도 않는 매우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고 생각했었다”며 “그러나 변호사 시절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의 근면함과 성실함, 정중함에 충격받았다. 양국 관계는 정치적으로 왜곡된 것이라고 보게 됐다”고 했다. 이 대표는 작년 12월 국회에서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 일본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며 “한·미·일 협력과 한일 협력은 대한민국의 중대한 과제”라고 했다.
다만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에 대해선 “지나치게 굴종적 태도”라며 “한국과 일본 간의 감정적 갈등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가려졌을 뿐”이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일본과의 분쟁에 대해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에 ‘북·중·러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 정책을 고집했다’는 것을 탄핵소추 사유로 들었었다.
이 때문에 여권에선 이 대표의 변신이 오로지 표를 위한 것이지 진정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과거 언행을 보면 민주당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떤 혼란과 위기로 가득할지 알 수 있다”며 “이 대표는 정치적 보호색을 갈아치우는 ‘카멜레온 정치’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국회 특별방문단으로 도쿄를 방문했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한 방송에 출연해 “일본 사람들이 내게 ‘이재명 대표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많이 했다”며 “지금까지 이 대표가 했던 말이 많은데, 최근 전향적 자세로 바뀌면서 혼선이 오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고, 이 대표는 과거사 문제와 별개로 원래부터 한·미·일 협력을 중시했다”고 주장한다. 주러시아 대사를 지낸 민주당 위성락 의원은 “이 대표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현 정부보다 강경한 태도를 갖고 있지만, 과거사 문제를 걸어서 현재와 미래의 협력을 막겠다는 뜻을 드러낸 적은 없다”며 “한일 관계 발전과 한·미·일 협력에 대한 기존 입장을 부연해서 설명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