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이 21일 발표한 전화 면접 방식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의 중도층 정당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에 20%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국민의힘 지지도는 34%, 민주당 지지도는 40%로 6%포인트 차였지만, 중도층만 놓고 봤을 때 그 차이가 두드러지게 컸다. 정치권에선 “국민의힘이 계엄·탄핵 국면에서 ‘보수 결집’에만 열을 올리는 사이에 중도층 민심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갤럽이 지난 18∼20일 실시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념 성향을 중도층이라고 응답한 308명의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22%, 민주당 42%였다. 갤럽의 지난주 조사에선 중도층 정당 지지도가 국민의힘 32%, 민주당 37%였다. 일주일 사이에 중도층에서 양당 지지도 격차가 5%포인트에서 20%포인트로 벌어진 것이다. 이번 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의 ‘탄핵 찬성’ 응답은 69%, ‘탄핵 반대’는 25%, ‘모름·응답 거절’은 6%로 집계됐다. 탄핵 찬성 응답은 지난주 조사 때(60%)보다 9%포인트 높아졌고, 탄핵 반대는 지난주(33%)보다 8%포인트 하락했다.
◇보수 결집에 집중했던 국힘, 중도층은 이탈 조짐
국민의힘 지지도는 12·3 비상계엄 직후 급락했다가 작년 12월 27일 민주당이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탄핵소추한 것을 기점으로 반등세로 돌아섰다. 이런 여론 흐름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석열 대통령을 잇따라 접견하고, 탄핵 반대 집회에도 속속 합류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중도층의 국민의힘 이반 조짐이 여론조사 결과 나타난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탄핵 심판 결과에 따라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 경우 중도층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갤럽의 올해 첫 주간 정기 조사(1월 2주)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34%를 기록해 12·3 비상계엄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후 국민의힘 지지도는 39%(1월 3주)→38%(1월 4주)→39%(2월 2주)→34%(2월 3주)로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도층 응답만 떼어보면 같은 기간 국민의힘 지지도는 24%→28%→24%→32%→22%로 전체 평균 지지도와 비교해 10%포인트 안팎 낮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강성 지지층 목소리가 커지면서 일부 중도층이 이탈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중도층 민심은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에 모호한 태도를 취하거나, 일부 강성 지지층의 극렬 행동이 나타날 때 이탈하는 흐름을 보였다. 지난달 19일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군중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한 사태가 발생한 직후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중도층의 국민의힘 지지도(1월 4주)는 그 전주보다 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17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계엄 당시) 국회에 있었더라도 계엄 해제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발언한 직후 실시된 갤럽 조사에서도 중도층의 국민의힘 지지도는 전주보다 10%포인트 떨어졌다.
전화 면접 방식으로 실시되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사(社) 공동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중도층의 국민의힘 지지도는 20%대 박스권에 갇혀 있다. 올 들어 실시된 NBS 조사에서 중도층의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도는 ‘34% 대 21%’(1월 2주), ‘34% 대 24%’(1월 3주), ‘41% 대 24%’(1월 4주), ‘37% 대 30%’(2월 1주), ‘35% 대 25%’(2월 2주), ‘35% 대 25%’(2월 3주)였다. 중도층의 양당 지지도 격차는 설 연휴 직전인 1월 4주 조사에서 17%포인트 차로 벌어졌다가 설 연휴 직후 조사(2월 1주)에서 7%포인트 차로 좁혀지는 듯하더니 이후 2주 연속 10%포인트 차로 다시 벌어졌다.
ARS(자동 응답) 방식 여론조사에서는 중도층의 국민의힘 이반 흐름이 더 뚜렷했다. 리얼미터·에너지경제의 지난달 23~24일(1월 4주) 조사에서 중도층의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도는 39.8% 대 42.3%로 국민의힘이 2.5%포인트 앞섰다. 그런데 이달 13~14일(2월 2주) 조사에서는 중도층 민주당(47.8%) 지지도가 국민의힘(32.8%)을 15%포인트 앞서며 역전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중도·보수’를 표방하고 나온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탄핵 국면에 매여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 대표가 호적까지 파가면서 중도·보수에 침범하는 것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며 “우리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 민심 흐름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는 조기 대선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이 대표에게 중도층 표심을 잠식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 전문가들은 “중도층은 이슈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꾸는 등 변동성이 크고 이재명 대표에 대한 거부감도 작지 않기 때문에 양당이 향후 정국에서 이슈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민심 지형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도층 상당수는 국민의힘 지지를 윤 대통령 탄핵 반대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다만 양당의 정책·노선 기조가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따라 중도층 여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여론조사 전문가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 원장은 “중도층은 일관되게 탄핵 찬성 여론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국민의힘이 중도 지향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향후 중도층 여론이 민주당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