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대선과 권력 분산형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는 우원식 국회의장 제안과 관련해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사실상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 때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을 공약했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조기 대선 정국에 접어들고 집권 가능성이 커지자 개헌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대한민국은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기형적 제도 때문에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레임덕이 시작된다”며 “재평가받을 기회도 없기 때문에 국정에 안정성이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그래서 4년 중임제로 바꾸자는 것에 전 국민이 공감하지 않나. 동의한다”고 했다. 권력 구조를 개편하는 개헌에 원론적으로는 찬성한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을 공약하고, 지방선거·총선과 대선 일정을 맞추기 위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임기를 1년 단축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날 “지금 당장은 민주주의 파괴를 막는 것이 훨씬 더 긴급하고 중요하다. 우선은 내란 종식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조기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는 제안엔 선을 그은 것이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개헌으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생각을 국민의힘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개헌 문제를 갖고 일부 정치 세력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논점을 흐리고 내란의 문제를 개헌 문제로 덮으려고 하는 시도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게 중요한데, 대선일에 권력 분산형 개헌을 동시에 하자는 주장은 이를 희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대표는 다만 대선과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시행에 대해 “5·18 정신 수록과 계엄 요건 강화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광주 5·18 정신을 헌법 전문(前文)에 게재하는 것, 또 계엄 요건을 강화해서 계엄을 남용해 친위 군사 쿠데타를 할 수 없게 하는 것에는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 본다”며 “국민투표법이 신속히 개정되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개헌론의 핵심인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해선 ‘대선 뒤로 미루자’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감사원의 국회 이관, 국무총리 추천제 도입, 결선투표제, 자치 분권 강화, 국민 기본권 강화 등은 매우 논쟁의 여지가 커서 국론 분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며 “이런 복잡한 문제들은 각 대선 후보들이 약속하고 대선이 끝난 후 공약대로 개헌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의 이런 주장을 두고 국민의힘에선 “개헌의 핵심인 권력 구조 개편을 뒤로 미루자는 주장인데 대통령이 되는 데 급급해 사실상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뜻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표가 이번 대선의 가장 유력한 주자인데 굳이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고 임기를 단축하는 개헌과 같은 변수를 만들지 않겠다는 뜻 같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이재명 민주당은 시대 교체를 반대하는 ‘호헌(護憲) 세력’임을 보여줬다. 개헌은 ‘나중에, 나중에’ 하고, 의회 독재에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까지 다 휘둘러 보려는 속셈”이라며 “‘나까지는 누릴 것 다 누리고, 내 뒤부터 권력도 나누고 임기도 줄이겠다’고 해서는 개헌이 될 리 없다”고 했다. 개헌을 주장해온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이번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우 의장의 제안에 적극 찬성하고 지지한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끝난 이상 국가 권력 구조 개헌은 대한민국 백년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국가적 과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