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봉 넘기는 이재명 -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박찬대 원내대표에게 의사봉을 넘기고 있다. 이날부터 박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대행직을 맡게 됐다. /남강호 기자
의사봉 넘기는 이재명 -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박찬대 원내대표에게 의사봉을 넘기고 있다. 이날부터 박 원내대표가 당대표 권한대행직을 맡게 됐다. /남강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파면된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노조 등 좌파 진영을 중심으로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을 ‘내란(內亂) 세력’으로 규정하는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가 헌법과 계엄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12·3 비상계엄 6시간’뿐 아니라 윤 전 대통령 재임 기간 3년을 사실상 ‘내란 통치 기간’으로 규정하고 관련 정책 등에 대한 청산을 주장하고 나왔다. 이에 더해 계엄 해제 이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등 정부 인사들의 의사 결정을 두고도 “내란 동조 행위”라며 이번 대선을 내란 종식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국민의힘 등에선 “대선을 유리한 구도로 끌고가기 위해 윤석열 정부 집권기 전체를 내란 프레임으로 엮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지난 8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파면은 12·3 내란 종식이 아닌 신호탄에 불과하다”며 검찰, 국가정보원, 대통령실, 대통령경호처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윤석열 정부 권력 기관에 대한 일종의 적폐 청산 수사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됐다. 민주당에선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대통령이 헌재(憲裁)의 탄핵 인용으로 직을 상실한 경우 대통령 수사와 관련된 대통령기록물에 대해서는 보호 기간을 두지 않고 공개할 수 있게 하는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개정안도 발의한 상태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 3년 치 기록물을 언제든 열어보고 수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래픽=백형선

민주당은 한덕수 대행의 권한 행사를 두고도 “내란”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한 대행이 오는 18일 퇴임하는 대통령 몫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에 이완규·함상훈 2명을 후보자로 지명하자, 전현희 민주당 최고위원은 9일 당 회의에서 “내란 세력들이 헌재를 장악하려는 음모”라고 했다. 한 대행은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내란 대행”이라고 공격하며 그의 권한 행사를 “제2의 내란 획책 음모”라고 했다. 민주당은 앞서 자기들이 추천해 국회에서 선출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촉구하면서는 한 대행을 향해 “임명하지 않으면 내란 수괴”라고 했었다.

민주당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국민의힘에선 “정략적 내란 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민주당 움직임에는 좌파 성향 노조와 일부 단체도 가세하는 분위기다. 일부 언론 관련 단체에서 계엄 사태 이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박장범 KBS 사장 등에 대한 해임을 요구하고 나온 것이다. YTN 민영화, KBS 수신료 분리 징수 등 윤석열 정부의 방송 정책이나 방통위의 2인 상임위원 체제까지 ‘내란 사례’로 거론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헌재에서도 방통위가 2인 체제로 파행 운영된 과정에서 민주당이 자기들 몫 위원을 추천하지 않은 점을 한 원인으로 지적했다”며 “자신들 맘에 들지 않는 건 모두 내란으로 몰고 가려는 행태”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을 주장했던 단체 ‘촛불행동’은 내란 행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내란 행위자 특별조사위원회와 특별재판부를 설치해 내란 주범, 가담자, 선전자를 발본색원할 때까지 조사·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대선에 승리하는 것을 상정하고 국민의힘 등을 대상으로 차기 정부 출범과 함께 ‘내란 청산’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12·3 계엄 사태 직후부터 윤 전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라고 규정하고 탄핵소추안의 절반 이상을 내란죄 혐의로 채웠다. 하지만 헌재의 탄핵 심판이 시작되자 민주당이 주도한 국회 탄핵 소추인단에서 내란죄 부분은 제외했다. 이재명 전 대표도 한동안 기업인을 만나고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라며 정책 우클릭에 나섰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자 민주당에선 다시 국민의힘과 일부 보수 진영을 ‘내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국민의힘을 향해 “대선 후보를 내지 말라”고 요구하고 나왔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에서 대선 캠페인 때는 물론 집권하고서도 박근혜 정부 4년에 대해 대대적인 적폐 청산 몰이에 나섰던 문재인 정권 때와 유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글로벌 통상 전쟁 등 국제 질서가 급변하는데 정치권이 과거사 적폐 몰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