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이덕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국회 시정연설 전 국회의장실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등과 가진 비공개 환담에서 “인사청문회도 가급적 본인을 검증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며 “청문회 문제는 반드시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29일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이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결선 라운드 진출과 관련해 “승패에 상관없이 이번에 대통령께서 ‘연좌제’를 깼다”고 하자, “부부는 각각의 인격체 아닌가. 각자 독립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을 하는 것”이라며 인사청문회 문제도 언급했다고 한다. 유 본부장의 남편은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서 20대 국회의원과 대변인을 지낸 정태옥 전 의원이다. 이를 두고 김 사무총장이 ‘문 대통령이 연좌제를 깼다’고 한 것이다.

강 대변인은 “인사 시 남편 또는 부인이 누구인지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라며 “실제 문 대통령은 남편 또는 부인이 누군지 개의치 않고 인사를 해왔다. 2017년 지명한 민유숙 대법관도 남편이 당시 야당 소속이었다”고 했다. 민 대법관의 남편은 문병호 전 국민의당 의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실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등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자리는 비어 있다. /뉴시스

박병석 의장은 “국회에서도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과 자질 검증은 공개하는 방향으로 청문회 제도를 고치려 하고 있다”며 “현재 국회에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까지 발의돼 있는 상태지만 현재 논의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그 부분은 반드시 개선됐으면 한다”면서 “우리 정부는 종전대로 하더라도 다음 정부는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좋은 인재 모시기가 정말 쉽지 않다. 청문회 기피 현상이 실제로 있다”며 “본인이 뜻이 있어도 가족이 반대해서 좋은 분들을 모시지 못한 경우도 있다. 다음 정부에서는 반드시 길이 열렸으면 한다”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현재 청문회 기피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면 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닐 것”이라며 “후보자 본인보다도 주변에 대한 얘기들이 많고 심지어 며느리의 성적증명서까지 요구하는 상황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에서 만약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음 정부라도 반드시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정말 절실하다고 판단하셔서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김영춘 사무총장의 ‘연좌제’ 발언에 “요즘은 부부별산제도 하는 세상이다. 남편 일은 남편 일이고 부인(유 본부장)은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이니 다른 이야기”라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28일 국회 시정연설을 한 뒤 퇴장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나라가 왜이래!’라고 적힌 팻말을 들어 보이며 시위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