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12월 24일(현지 시각) 중국 쓰촨성 청두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 맞은편은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 두 정상은 수출 규제 등 양국 간 현안에 대해 대화를 계속해 나간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갈등의 원인인 징용 문제에 관해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연합뉴스

대법원의 일제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일본 기업이 징용 배상에 응하면 추후 한국 정부가 전액 보전한다’는 방안을 비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타진했지만, 일본 측이 거부했다고 아사히(朝日)신문이 지난 31일 보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1일 “사실 무근”이라고 했다.

아사히는 청와대가 노영민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징용 문제 해결안을 검토했고,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문재인 대통령 의향을 고려해 올해 봄 ‘일본 기업 배상 후 한국 측의 사후 보전’ 안을 비공식적으로 제안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기업의 지출이 사후 보전되더라도 판결을 이행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응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한국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유사 소송이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있다고 한다.

청와대는 아사히 보도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다만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는 일본 기업에 실질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 측이 추후 보전해주는 안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지는 꽤 됐으나,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4일 청와대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 전화 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31일 페이스북에 아사히 보도와 관련, “토착왜구는 청와대에 있었네”라며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청와대에서 국민을 속이려 한 셈이니”라고 썼다. 그러면서 “죽창 들고 설치더니 이게 뭐하는 짓인지”라고 했다. 징용 배상 문제와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 갈등이 첨예했던 작년 7월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올린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꼬집은 것이다.

이르면 내년 봄 일본 기업 압류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우리 정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이미 ‘피해자 중심주의’와 함께 ‘사법부 판결에 불개입’ 원칙을 천명한 만큼 ‘일본 기업의 판결 이행 시 사후 보전’ 외엔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일본 측은 징용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진전된 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한국이 의장국인 연말 한·중·일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교 소식통은 “내년엔 한국의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일본의 정치 일정 등으로 문제 해결이 더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논의 진전 없이 올 연말을 넘기면 양국에 큰 부담”이라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와 징용 기업이 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우리 입장을 지난달 29일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강조했다”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