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왼쪽)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 국장이 지난 7일 아스아드 알샤이바니 시리아 과도정부 외교장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외교부

지난 7일 덥수룩한 턱수염의 시리아 과도정부 외교장관 옆에 긴 파마머리의 한국 정부 대표단장이 섰다. 13년간 내전 끝에 아사드 정권이 축출되고 과도정부가 수립된 시리아에 대표단을 이끌고 간 김은정(56)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 국장이다. 시리아는 남북한을 제외한 191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한국과 수교를 맺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김 국장은 변화의 바람이 부는 시리아와 수교의 물꼬를 트기 위해 정부 대표로 시리아를 찾았다.

북한의 오랜 우방국이었던 시리아에 우리 정부 대표단이 방문한 것은 2003년 이후 22년 만이다. 외교관이 시리아를 찾은 것은 1992년 장만순 차관보가 마지막이었다. 김 국장은 12일 본지 인터뷰에서 “쿠바와 마찬가지로 시리아와 수교 노력은 오래됐다”면서 “하지만 여러 방해와 현실적 어려움으로 못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라고 했다.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시리아는 가는 길부터가 험난했다. 시리아행 항공편이 거의 없었다. 김 국장 등 대표단 일행은 비행기로 두바이를 거쳐 레바논 베이루트에 들어가 육로로 시리아 국경을 넘었다. 여전히 지방 곳곳은 공권력이 닿지 않아 치안이 불안했다. 김 국장 일행은 레바논에서부터 방탄차를 타고 무장 경호팀의 엄호를 받으며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입성했다. 김 국장은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 프랑스, 독일 등 세계 각국이 새 정권이 들어선 시리아를 찾아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면서 “다마스쿠스에 제대로 된 숙소가 2개 정도밖에 없는데 외국 사절단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외국 사절단들은 방이 부족해 호텔 로비나 복도에 선 채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할 정도라고 한다.

김은정(왼쪽)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과 아스아드 알 샤이바니 과도정부 외교장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외교부

김 국장은 두 자녀를 둔 엄마다. 이번 험지 현장 방문을 여성 대표단장이 이끈 것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요즘에는 외교 현장에 금녀의 공간은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경북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한 김 국장은 1998년 외무고시 32회로 입부해 중동 1과장, 아중동국 심의관을 거쳐 2022년부터 아중동국장을 맡고 있다.

아스아드 알샤이바니 과도정부 외교장관은 지난 7일 접견에서 김 국장에게 “한국 드라마를 감명 깊게 봤다”면서 드라마 이야기를 한참 했다고 한다. 많은 시리아인이 내전 기간 난민 생활을 할 때 한국 드라마를 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김 국장은 “시리아는 미수교국이지만 2011년 내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한국 차가 수입차 점유율의 80%일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이미 가까웠다. 다마스쿠스에 코트라 사무실도 있었다”면서 “앞으로 K드라마를 비롯해 문화 교류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알샤이바니 장관은 내전 당시 전쟁터에서 구조 활동을 한 시리아 단체 ‘화이트 헬멧’을 한국 단체가 도와준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화이트 헬멧은 2017년 방한해 만해 평화대상을 받은 단체다.

김 국장은 지난 5~7일 시리아 방문 기간에 외교장관 외에도 과도정부 고위 관리를 비롯해 작년 12월 아사드 축출 당시 다마스쿠스에 주재하며 사태를 겪은 일본·이탈리아 외교관도 접촉했다. 김 국장은 “반군이던 현 과도정부 세력이 다마스쿠스에 무혈 입성했는데, 당시 아사드 정권 군인들은 이미 대부분 도망갔고 남은 자들은 백기 투항했다고 한다”면서 “군인들이 나라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거의 다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사드 정권도 더는 버틸 수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김 국장은 일찌감치 주요국 공관장에 내정됐는데 시리아 방문 등 현안을 매듭짓기 위해 부임도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국장은 “이번에 시리아를 방문하면서 외교관으로서 큰 뿌듯함과 자긍심을 느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