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일 우크라이나 북한군 포로가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 “한국행 요청 시 전원 수용한다는 기본 원칙과 법령에 따라 필요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군은 헌법상 우리 국민이며 포로 송환과 관련, 개인의 자유의사 존중이 국제법과 관행에 부합한다”면서 “이뿐만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반해 박해받을 위협이 있는 곳으로 송환돼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힌 북한군 저격수 리모(26)씨와 소총수 백모(21)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북에서) 포로는 변절과 같다”면서 “난민 신청을 해 대한민국에 갈 생각”이라고 했다. 북한군 포로가 직접 한국으로의 귀순 의사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 포로와 관련한 정부의 입장을 우크라이나 측에도 이미 전달했다”면서 “계속 필요한 협의를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에 우크라이나 측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협조할 뜻을 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북한군 송환 문제를 신속하게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은 “절차가 차일피일 미뤄지면 북한 측이 여러 경로로 방해 공작에 나설 수 있다”면서 “포로들이 북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이미 밝혔기 때문에 늦출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우리 정보 당국이 우크라이나 당국과 긴밀히 소통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올 순 있겠지만, 현재로선 송환 과정에 큰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들의 송환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북한의 처참한 인권 침해 방조를 멈추고 북 청년들의 구출에 정부가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호준석 대변인도 논평에서 “정부는 북한 포로들의 난민 신청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동포 청년들이 자유 대한민국에서 인간다운 삶을 시작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북한군 포로와 관련, 별도의 논평을 내지 않았다.
◇北 방해 공작 우려에, 북한군 한국행 신속 진행키로
북한군이 전쟁 포로가 된 것은 6·25전쟁 이후 처음이다. 본적지 송환이든 한국행이든 전례가 없지만, 일반적인 국제법에 따르면 인도적 차원에서 한국 송환 요건이 성립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국가정보원도 지난달 13일 정보위 국회 보고에서 “북한군도 헌법 가치에 의해 우리 국민이기 때문에 포로가 된 북한군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관점”이라며 귀순 의사를 밝히면 우크라이나 측과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쟁 포로의 처우에 관한 제네바 협약이 ‘교전 중에 붙잡힌 포로는 전쟁이 끝나면 지체 없이 석방해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인의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국제법상 강제 송환 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제네바 제3협약에 관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주석서’에 따르면 송환 시 인권 침해 우려가 크면 포로 송환 의무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포로들이 송환되면 극형에 가까운 처벌을 받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중대한 인권 침해를 받을 수 있다”면서 “정치적 망명의 요건이 성립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북한군 포로 리씨는 인터뷰에서 포로 송환 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전의 북한 포로들이 전쟁 포로가 아닌 해외에 파견된 일반적인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로 간주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과 러시아는 한국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영상과 사진 등 객관적 증거물을 제시해도 북한군 파병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포로 인원에 대한 소속도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면서 “이럴 경우 국제법상 전쟁 포로 지위를 얻지 못할 수도 있고, 이에 따라 포로 협상의 대상도 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약 1만1000명 규모 병력을 러시아로 보낸 이후 아직 파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군 포로의 귀순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일반 탈북자와 동일하게 제일 먼저 합동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국가정보원 등 5개 국가기관은 최장 2개월간 합동 신문을 통해 이들의 탈북 동기, 위장 탈북 여부 등을 조사한다. 신문에서 대공 용의점이 없다는 판단을 받으면 사회 적응 교육 시설인 하나원에 들어간다. 하나원에서는 문화 이질감 해소, 심리 안정, 진로 상담 등 각종 교육을 3개월간 받는다. 수료가 되면 주민등록증과 거주지를 배정받고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남성욱 교수는 “이번 북한 군인들은 북 당국 거짓말에 속아 전쟁터에 투입됐다가 다수 동료의 죽음 속에 포로가 된 처지이기 때문에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을 것”이라며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선 각별한 돌봄과 사회 적응 훈련, 그리고 사회 배출 후에도 안전을 보장해주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