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포로 교환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행이 난항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5일 제기됐다. 미국의 종전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북한군의 한국행을 반대하는 러시아 입장을 반영한 포로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포로들이 최근 잇따라 한국행 의사를 밝힌 만큼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북한군 포로 문제가 미국과 러시아 협상 테이블에 ‘카드’로 오를 경우 미국 등 제3국행이나 최악의 경우 러시아·북한 강제 송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남성욱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5일 “러시아 등을 자극하지 않게 은밀성을 유지하며 이들을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데려오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군 포로들이 강대국 논리의 희생자가 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염돈재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본지에 “북한군 포로는 헌법상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다른 나라 기준으로 러시아군 또는 러·북 연합군 포로로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 1월 이들을 생포한 이후 공개한 이들의 신분증은 러시아어로 적힌 러시아 신분증이었다”고 말했다. 파병 사실을 숨기려고 러시아와 북한이 위조 신분증을 만든 것이지만, 미·러 간 종전 협상에서는 러시아군으로 간주해 송환 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북한군 포로는 러시아 도착 이후 북한으로 보내져 극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크다.
염 전 차장은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끝내고 대외 전략의 제1 타깃인 중국으로 넘어가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포로들을 러시아로 보내진 않더라도 협상 진전을 위해 러시아 입장을 고려하며 절충안으로 이들을 미국이나 제3국으로 보낼 수 있다”며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한국행 추진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한국행이 지연되면 북한군 포로들이 미국이나 제3국으로 가고 싶다고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기범 전 국정원 1차장은 “이미 언론에 노출된 북한 사람들은 탈북할 때 북한 내 자기 가족의 안전 문제 등 때문에 한국보다 제3국행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이 안전 보장을 약속하며 탈북자들을 설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헌법상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인 만큼, 이들이 다른 나라로 가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면서 “그건 탈북자에 대한 우리 원칙을 저버리는 안 좋은 사례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지난달 26일 국회 외통위에서 “북한군 포로의 귀순 의사가 분명하면 헌법상 규정에 따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외통위에서 “자유의사가 확인되고 한국에 온다고 한다면 통일부는 그분들을 수용하고 보호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은 “정부는 미국과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 측에 헌법상 우리의 의무를 충실히 설명하면서 북한 포로들을 최대한 티 나지 않게 로키로 데리고 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중 전략을 위해 러시아와 외교적 관계를 구축하려는 사정을 고려해 북한 포로 귀순 사실이 남북 간 정치적 문제로 표출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관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실장은 “포로들이 인터뷰한 걸 보면, ‘포로 출신인데 한국에 가서 잘 살 수 있을까’란 의문과 걱정을 반복해서 드러내고 있다”면서 “이들은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으로 우리가 이 우려 사항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남성욱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북한 포로는 6·25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로 전례가 없는 만큼, 이들을 일반 탈북자로 대우해선 안 된다”면서 “이들의 송환 절차부터 관계국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이들의 귀순 이후 정신적 치료와 정착 문제까지 안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