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남강호 기자, 뉴스1, 그래픽=김현국

외교부는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 것과 관련해 17일 밤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날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이같이 밝히며 “미 측은 동(同) 리스트에 등재가 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 연구 등 기술 협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날 미 에너지부의 한국 민감 국가 지정 사실이 공식 확인된 후 정부 내에선 지정 경위 파악과 관련한 혼선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정부 부처 간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그래픽=김현국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현안정책간담회가 끝난 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장관들 외 배석자들은 다 나가달라”고 했다. 이어 장관들을 상대로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 국가’ 리스트에 올린 사태와 관련해 질책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행은 “(금주 중 방미하는) 산업부 장관이 미 에너지 장관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면 늦는다”면서 “다른 부처들도 부지런히 움직여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지난 1월 미국의 민감 국가 리스트에 오른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달 초 언론 보도가 나온 후에도 “아직 확인 중”이라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선 잇단 탄핵 여파로 정부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각 부처가 대응책 마련보다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일을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한국이 민감 국가 목록에 추가됐다는 사실이 공표된 지 이틀이 지나도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외교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브리핑 요청에도 “미 정부 관계 기관과 긴밀하게 협의 중이다” “한·미 간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적극 교섭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외교부는 이날 밤 ‘미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라고 민감 국가 지정 배경을 언론에 설명했지만 이런 입장문이 나올 때까지 “한국 핵무장론에 대한 경고다” “차세대 원전 파트너에서 배제된 것 아니냐”는 등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조 장관은 사태 초기 최상목 대행에게 “미 에너지부를 상대하는 주무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정부 소식통은 “에너지부의 동향 파악을 놓친 책임이 산업부에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고 했다. 조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에 나와서도 이번 사안을 인지한 경위와 관련해 “주미 한국 대사관을 통해서 확인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미 대사관에 산업부 직원들이 파견된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외교부 관계자들도 최근 기자들 질문을 받으면 외교부도 이번 사건을 주미 대사관을 통해 파악하고 있다고 대응 중이다.

하지만 산업부는 미 에너지부와 원전 협력과 수출 문제를 주로 맡는다면서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등 안보 분야 업무는 외교부 소관이라는 입장이다. 산업부 한 관계자는 “주미 대사관을 총괄하는 것은 외교부 아니냐”면서 “에너지부에는 핵안보 부서가 따로 있기 때문에 주미 대사관 직원이나 산업부가 아닌 외교부 본부의 국제기구국 등이 따로 담당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국제기구국 국장은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보국과 핵안보 실무그룹 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사태를 조기에 파악하지 못한 책임과 향후 대응을 두고 부처 간 떠넘기기와 남 탓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월 초 갱신된 미 민감 국가 목록의 발효일이 내달 15일인 만큼, 그 전에 한국을 목록에서 빼는 데 총력전을 펴겠다는 방침이다. 안덕근 장관은 지난달 26∼28일 미국을 찾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만나 관세 정책 관련 논의를 했다. 그런데 3주 만에 다시 미국을 찾아 에너지부 장관 면담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정치권도 ‘네 탓’ 공세에 가세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완벽한 외교 참사이자 정부 실패”라며 “여당의 핵무장론과 계엄 선포로 인한 불신이 민감 국가 지정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반면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회의에서 “대통령 탄핵 상황에 권한대행까지 탄핵하고 친중·반미 노선의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국정을 장악한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