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유엔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미수교국인 시리아와 수교하기로 결정하고 곧 국무회의에서 처리될 것이라고 조선일보가 지난 11일 특종 보도했는데, 그 수교에 대한 안건이 드디어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이제 양국이 외교 공한(公翰)만 교환하면 정식으로 외교 관계가 맺어집니다.
1991년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지 34년만에 191개 유엔 회원국(남북한 제외) 모두와 수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외교 지도의 마지막 빈칸에 퍼즐이 맞춰지는 것이죠.
한국 정도의 경제 강국이 시리아와 수교하는 게 뭐가 대수냐 할 수도 있지만, 이번 수교는 사실 기적에 가깝습니다. 오죽하면 ‘북한 형제국’이라는 쿠바와도 수교를 했는데, 시리아만큼은 미수교국으로 제일 마지막까지 남겨둘 수밖에 없었겠습니까?
시리아 수교는 넉달 전인 작년말까지도 가능성 제로(0)였습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북한과 혈맹이었던데다 2011년부터 내전 중인 상태로, 한국과 수교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그럴 이유도 전무했습니다.
시리아와 이집트는 중동 전쟁에 참전한 북한과 혈맹인 두 아랍국입니다.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은 북한 김일성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습니다.
이집트가 북한과 대사급 관계를 맺고 한국과는 영사급으로만 관계를 제한하고 격상하지 않고 있던 것도 혈맹인 북한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이집트는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나서야 이듬해 한국과 대사급으로 외교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시리아는 그런 가운데도 한국과는 아예 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은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세계와 가깝게 지내는 축에 속했지만,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친러·친이란 성향의 반미·서방 진영이었습니다.
시리아는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과도 긴밀한 사이를 유지했습니다. 북한 핵기술· 탄도미사일·화학무기까지 제공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한국이 수교를 위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좀처럼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리아 아사드 정권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습니다.
2010년 12월 아랍국 튀니지의 한 과일 노점상 청년이 괴롭히는 단속반원들 때문에 못 살겠다며 분신 시위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철옹성과 같은 아랍의 독재자들이 우수수 자진 사퇴하거나 축출되는 이른바 ‘아랍의 봄’을 불렀습니다. 수십년간 쌓였던 분노의 가스가 작은 불씨와 만나 폭발했던 것입니다.
이에 튀니지에서 독재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장기 집권하던 벤 알리 대통령이 하야했습니다. 불길은 이웃한 아랍국가들에 옮겨 붙었습니다.
예멘의 살레,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 같은 아랍의 철권 통치자들이 순식간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부자(父子) 세습 독재 정권인 아사드의 시리아에도 퇴진 운동이 벌어졌는데, 아사드가 군대를 동원해 무력 진압하면서 급기야 내전으로 비화했습니다.
아사드 정권은 시리아에서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 기반의 정권입니다. 알라위파는 이슬람 시아파의 분파입니다. 그런데 시리아 국민의 다수는 수니파입니다.
수니파인 다수 국민은 알라위파인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이슬람에서 종파가 다르다고 꼭 정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사드 정권의 콘크리트 지지 세력은 알라위파였고, 이를 기반으로 장기 집권하기 위해 다수인 수니파를 철권 통치로 억압했습니다. 그렇게 수니파를 중심으로 반아사드 세력이 형성됐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중동 파워 게임을 종파 싸움으로만 해석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종파 요소를 아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아사드 정권은 내전에서 수적으로 밀리고, 서방 중심의 국제 여론에서도 궁지에 몰렸지만, 다른 아랍국처럼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와 이란을 든든한 후원자로, 뒷배로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와 이란은 우방인 아사드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내전이 1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고, 수도 다마스쿠스를 빼고 다른 지역은 반군 손에 넘어갔는데도 아사드 정권이 꿋꿋하게 계속 버틸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뜻밖의 상황이 전개됩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면전에 들어간 것입니다.
푸틴은 전쟁의 승패가 단기간에 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는 뜻밖에 잘 싸웠고, 전쟁은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도 끝나지 않고 3년이 넘도록 지속됐습니다.
시리아의 버팀목이던 러시아가 반군들에 치이는 아사드 정권을 챙겨줄 여력이 전쟁 장기화로 바닥 나 버린 것입니다. 오죽하면 러시아가 북한에 손까지 벌렸겠습니까.
뜻밖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가자 지구의 철조망을 넘어 이스라엘 도시까지 침투하는 대기습 작전을 감행해 양측간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사태 초기만 해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하마스만 묵사발 내고 멈출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확전의 확전을 거듭했습니다.
급기야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에도 공방전이 오갔고, 더 나아가 이란도 이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10여년간의 내전으로 재정이 바닥나고 무기고가 텅텅 빈 상황인 아사드 정권이 이스라엘과도 싸워야 하는 처지에 빠진데다가, 버팀목인 이란까지도 전쟁통에 빠진 것입니다.
이란은 장기간의 국제적 제재로 약골이 됐고, 1979년 혁명 세력의 노쇠화와 젊은층의 쇄신 요구로 국내적으로도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거기에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박까지 받게 됐으니, 이란 입장에선 아사드 정권 뒷바라지까지 하기가 버거워진 것입니다.
내전 중인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유일한 버팀목인 러시아와 이란이 둘 다 전쟁으로 제코가 석자인 상태가 돼 아사드의 두 버팀목이 흔들대는 상태가 됐습니다.
그 상황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가 바로 2024년 하반기였습니다. 때가 왔음을 느낀 시리아 반군 세력은 북부 지역에서 다마스쿠스를 향해 남진했고, 수일만에 아사드 대통령궁에 무혈 입성했습니다.
아사드와 그의 일당들은 제대로 맞설 엄두도 못 내고 러시아에 SOS를 쳐서 비행기를 제공받아 러시아로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끈질기게 버티고 버티던 50년 독재 역사의 아사드 정권이 뜻밖의 일이 겹치고 겹치더니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고만 것입니다. 반군이 다마스쿠스를 향해 나선지 단 2주만의 몰락이었습니다.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처리된 시리아 수교안은 이렇게 끝까지 한국을 거부하던 아사드 정권이 사라지고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년 전만해도, 아니 넉달 전만해도 시리아와의 수교가 이렇게 도적 같이 훅 찾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동서독 통일 전인 1989년 10월 25일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한국을 방문해, “독일보단 한반도 통일이 먼저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독일 통일은 10년은 지나야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브란트의 서울 연설이 있은지 딱 보름만인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0월 독일의 통일이 이뤄졌습니다.
브란트는 정말 몰랐던 것 같습니다. 통일이 도적 같이 코앞에 다가왔던 사실을 말입니다.
아사드 정권의 몰락을 보면서 김정은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김정은은 푸틴의 러시아에 ‘올 인(all in)’하고 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져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미래의 일은 신의 영역입니다만, 혹시 모르니 이런 가정은 해두고 있어야 할듯합니다. 남북 통일도 도적 같이 찾아올 수 있다고. 시리아 수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