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한국의 안보리 회부 위기 ②회]
지난회에서 계속됩니다
한국원자력연구소가 2000년 0.2g의 농축우라늄 분리 실험을 한 사실이 알려져 2004년 8월 말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사찰단을 급파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입니다. 9월 9일 AP 통신은 한국이 문제의 실험에 앞서 1982년 서울 공릉동의 연구용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이 장기간에 걸쳐 비밀리에 핵 무장을 준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보도였습니다. 그러자 외교부와 과기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일제히 나서서 기자들에게 해명했습니다. 이런 요지였습니다.

-문제의 활동은 이미 폐기된 서울 공릉동 소재 연구용 원자로에서 IAEA 안전조치하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 문제는 IAEA 사찰 현안으로 지난 수 년간 우리 정부와 IAEA 간에 협의돼 온 사항이다. 우리는 당시 플루토늄 분리 사실을 곧바로 IAEA에 보고했으며, 그 양도 마이크로그램(mg·1000분의 1g) 단위의 극미량으로 확인됐다.(약 86mg)
- 우리 정부는 IAEA 안전협정 등 비확산 공약을 확고히 견지하고 있다. 높은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로이터, “한국 우라늄농축 安保理 회부될 것”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다시 긴급 뉴스가 날아들어 정부 관계자들과 외교부 출입기자들을 긴장시켰습니다. 로이터 통신이 미국의 관리들을 인용, 한국의 농축 우라늄 분리 실험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뤄질 것이라고 전한 겁니다. 로이터는 “미 행정부 고위 관리가 ‘한국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로이터는 “(한국을 회부하는 것은) 핵 비확산 문제에 대한 접근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미 관리들이 말했다”고 했습니다. 규정에 따르면, IAEA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서명국이 IAEA로부터 허가받지 않은 활동을 했을 경우 이를 안보리에 회부하며, 안보리는 제재를 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미 행정부의 한 관리는 “유엔 안보리 의장은 한국에 ‘손목을 툭 치며 나무라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온건한 질책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로이터는 전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는 것은 큰 불명예로,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신뢰가 크게 저하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정동영 NSC 위원장 긴급 기자회견
노무현 정부는 과거 우라늄·플루토늄 추출 실험으로 야기된 우리나라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벗기 위해 총력전을 폈습니다. 정동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은 2004년 9월 12일 긴급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정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레이저 이용 동위원소 분리 실험, 공릉동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에 대해 외국에서 사실관계에 기초하지 않은 불필요한 의혹 제기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는 일부 과학자들이 실시한 순수한 과학 실험으로 핵물질 농축, 재처리 프로그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위원장은 AP 통신의 플루토늄 추출 의혹 보도 이후에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한국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적극 해명했음에도 국제사회의 의혹이 풀리지 않자 이날 직접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정 위원장은 회견에서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적극 비확산 노력에 참여하며 국제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핵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원자력 기술통제센터를 분리 독립, 더 체계적인 관리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외신 기자들이 우리 정부가 추가적인 핵 물질 실험을 감추고 있는 것이 없는 지를 질문하는 등 의혹이 풀리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 엘바라데이 사무총장 “심각한 우려”
AP 통신 보도 4일 후인 2004년 9월 13일 엘바라데이 모하메드 IAEA 사무총장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그는 한국이 1982년 천연우라늄을 전환해 150kg의 금속우라늄을 생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신고 시설 세 곳이 사용됐으며 금속우라늄 150kg이 현재 134kg으로 줄어든 과정이 신고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엘바라데이는 한국의 우라늄 농축 실험 외에 플루토늄 추출 실험에 대해 “심각한 우려(serious concern)”를 표명했습니다. 이는 이례적인 표현으로 그가 한국의 우라늄 분리 및 플루토늄 추출 실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엘바라데이뿐만 아니라 IAEA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 측에 “한국이 더러운 짓을 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과기부는 엘바라데이 사무총장 주장과 관련, “당시 천연우라늄의 국제 가격이 너무 비싸 핵연료 국산화 차원에서 0.02%의 우라늄을 함유한 수입 인광석에서 천연우라늄을 추출하는 연구가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금속우라늄을 부가적으로 생산하게 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당시 추출된 천연우라늄은 월성 원전용 핵연료로 대부분 사용됐는데, 남은 물량은 금속우라늄 150kg으로 변환됐다가 이 중 3.5kg이 2000년 우라늄 분리 실험에 쓰였다는 겁니다. 또 실험에 사용된 것과 손실분을 제외한 134kg의 금속우라늄은 원자력연구소에 보관돼 오다가 2004년 추가 의정서 비준을 계기로 IAEA에 신고했습니다. 실험 시설들은 모두 폐기됐고, 8월 말 급파됐던 IAEA 사찰단 조사에서 이를 확인했는데 엘바라데이가 사태를 부풀린다는 불만이 우리 정부 안팎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장인순 소장 “엘바라데이 3연임 욕심 때문이었다”
장인순 당시 원자력연구소장은 사태 초기부터 원자력연구소가 IAEA의 규정을 크게 위반한 것이 없는데 IAEA가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우라늄 농축 실험은 나의 지시로 이뤄진 것”이라며 “핵 연료 생산 및 농축 기술의 국산화를 목표로 삼아 온 과학자로서 최신 기술인 레이저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이 실제로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실시했다”고 했습니다.
또, “실험은 학문적 호기심에서 한 것이며, 19기의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의 연구자로서 원전 연료용 우라늄을 농축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장인순 박사는 지난 21일 전화 인터뷰에서도 당시 실험은 큰 문제가 없었다며 “2004년의 소동은 엘바라데이의 3연임 욕심 때문에 시작됐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당시 엘바라데이는 사무총장직을 3연임하고 싶어했는데, 우리나라의 0.2g 농축 우라늄 분리 실험이 보고되자 강경 대응을 주장하며 연임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통상 사찰단을 파견할 때 2~3개월이 걸리는데 0.2g 분리가 보고된 후 1주일 만에 사찰단을 파견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장 박사의 지적대로 엘바라데이는 미국으로부터 이란 등의 핵 활동에 대해 관대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한국의 핵물질 실험 사태 다음 해인 2005년 6월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 “북한과 나란히 안보리 회부되나”
원자력연구소가 우라늄·플루토늄 관련 실험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문제로 우리나라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지 여부가 당시 노무현 정부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이 문제로 안보리에 회부될 경우, 이미 북핵 문제로 안보리에 계류 중인 북한과 함께 남북한이 핵 문제로 안보리에 회부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9월 초 사찰을 마친 IAEA 사무국은 최소한 2개월 동안 사찰 결과를 분석 후, 11월 말 개최되는 제49차 이사회에서 이를 보고하기로 했습니다. IAEA가 11월 이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과거 핵물질 관련 실험을 안전조치 위반(Violation)으로 판정할 경우, 안보리에 회부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신고 위반으로 경미하다고 판단되면, 이사회 직권으로 이를 종결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그러나, 이사회가 이를 안전조치 불이행(Non-Compliance)으로 판정할 경우, 자동으로 안보리에 회부됩니다. 안보리가 중대한 위반 사안으로 인지하면 최악의 경우 경제적 제재를 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NSC, 외교부, 과기부 내에서 각각의 입장 차이와 의견 충돌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됐습니다. 당시 과기부와 원자력연구소는 두 실험이 IAEA 규정을 지켜가며 할 만한 실험을 했다는 입장이 강했습니다. 추가 의정서 비준을 계기로 과거의 실험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도 있었습니다.
반면 외교부는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 나라가 IAEA의 또 다른 ‘문제아’로 찍힐 경우 북핵 문제 해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특히 IAEA를 막후에서 움직이는 미국과의 관계를 걱정하는 외교관들이 많았습니다.
◇ 미국은 초기엔 비교적 우호적
미국은 사태 초기에는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이었습니다. 국무부의 리처드 바우처 대변인은 2004년 9월 초 “(한국의 핵 물질) 실험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면서도 “한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보고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우려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IAEA 차원에서 사태가 정리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2000년 우라늄 농축에 이어 1982년 플루토늄 추출 실험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변했습니다. 존 볼튼 미 국무부 군축·안보담당 차관(나중에 유엔 대사, NSC 국가안보보좌관 역임)을 비롯한 강경파들이 원칙론적 대응을 주장하면서 미국은 한국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방향으로 기울었습니다. 엄격한 핵 실험 규제 차원에서 한국에 대해 원칙적 대응을 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입니다. 당시 정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핵 물질 실험 사건이 공개된 이후, 대만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다”며 “핵을 이용한 테러까지도 우려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국 문제를 그냥 넘기기 곤란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IAEA와 미국의 강경 기류가 알려지면서,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관계자들은 크게 두 파로 나뉘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안보리 회부되는 것을 막기는 어려우니 안보리에서 ‘주의 조치’ 정도로 마무리되도록 하는 데 주력하는 편이 낫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와는 달리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컸습니다. 모든 외교력을 총동원해 미국과 IAEA 이사국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부 외교부 관계자들은 “핵 문제로 북한과 나란히 유엔의 ‘심판대’에 서는 광경은 한국 외교 사상 최악의 사태로 기록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