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기존 최대 규모 함정(1500t 압록급 호위함)보다 3배 큰 신형 5000t급 구축함을 건조해 물에 띄웠다. 지난달 핵추진 잠수함 건조 모습을 공개한 데 이어 ‘이지스구축함’급 신형함을 공개하며 해군 전력이 질적으로 도약했음을 과시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요격이 어려운 수중·수상에서도 핵 공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며 한미 방어 체계를 교란하려는 시도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26일 북한 관영 매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남포조선소에서 5000t급 신형 다목적 구축함 ‘최현’호 진수식을 했다고 전했다. 배수량 기준 기존 압록급보다 3배는 더 크고 압록급에는 없는 함대지·함대공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 수상함 가운데 처음으로 수직발사대(74개 추정)를 장착한 최현호가 최대 10대에 달하는 KN-23 계열 전술핵탄도미사일과 수십 발의 전술핵 탑재 가능 순항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360도 전방위 감시가 가능한 위상배열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북한판 이지스구축함’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김정은은 구축함에 대해 “초음속전략순항미사일, 전술탄도미사일을 비롯하여 육상 타격 작전 능력을 최대로 강화할 수 있는 무장 체계들이 탑재됐다”고 했다.
◇전술핵 10기 포함 발사대 74개… 김정은 “다음은 핵잠”
북한이 그간 보유하지 못했던 구축함을 건조한 것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핵·미사일 능력을 기반으로 해상에서 핵 공격이 가능한 플랫폼을 갖추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현재 개발 중인 핵추진 잠수함까지 전력화가 될 경우, 지상으로부터의 핵 공격에 초점을 맞춘 우리 방어 체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정은은 이날 최현호를 “해군 강화의 신호탄”이라고 평가한 뒤 “두 번째 신호탄은 핵동력 잠수함 건조 사업”이라고 했다.
이날 진수식에서 김정은과 딸 김주애는 함께 함에 올라 함내를 둘러봤고, 김정은은 배 이름을 따온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 부조(浮彫)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헌화했다. 최현은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부친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진수식 연설에서 “우리는 내년도에도 이런 급의 전투 함선들을 건조할 것이며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더 큰 순양함과 각이한 호위함들도 건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원양작전함대를 건설하고자 한다”고 했다.
북한 해군력은 아직까지 우리 군과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한국 해군은 이지스 구축함 4척 등 구축함 12척을 보유하고 있고, 호위함도 17척 보유하는 등 재래식 전력에서 북한 해군을 압도하고 있다. 북한은 잠수함 전력에서 우리를 앞서지만 우리 군 대잠 능력도 강화돼 실질적 위협이 되기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이 해군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우리 신형 구축함 도입 계획인 KDDX 사업은 지연되면서 해군력 격차가 차츰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27일 “최현호는 위상배열 레이더와 대공·대함·대지 능력까지 갖춘 첫 ’북한판 이지스’함으로 핵탄두 미사일이 장착된다면 우리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며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이어 최현호 진수는 우크라이나전 참전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최첨단 군사기술을 이전받고 있는 징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사진으로 공개된 위상배열 레이더의 실제 능력 및 전술핵미사일 탑재 가능성 등은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김정은은 이날 “함선들을 중간계선 해역에서 평시 작전 운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이날 처음 언급한 ‘중간계선’이 북방한계선(NLL)을 부정하는 북한의 새로운 해상 경계 주장인지는 확실치 않다. 군 관계자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천명해온 북한이 중·러의 묵인하에 해상 국경선 분쟁화를 노릴 수 있다”며 “서해 기준 현행 NLL과 유사하나 지금보다 남쪽으로 획정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간계선의 의미에 대해 “NLL과 같이 해상 경계선을 뜻하는 용어로 보인다”며 “두 국가론 이후 영토 관련 내부 정리가 있어 이것을 반영한 용어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지스함
회전형 레이더 대신 위상 배열(AESA) 레이더를 4면에 고정형으로 탑재해 사각(死角) 없이 적 항공기·미사일을 탐지·추격·요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함정. 엄밀히는 이를 최초 개발한 미 해군의 ‘이지스 시스템’을 탑재한 배를 말한다. 이지스란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가 딸 아테나에게 준 방패 이름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