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 편파 판정 논란으로 반중(反中) 정서가 확산되면서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중풍(中風)’ 변수에 긴장하고 있다. 여야는 대선 주자까지 나서 “편파 판정에 분노한다”며 중국 당국을 겨냥한 비판을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대선을 앞두고 친중, 반중 같은 정치적 유불리보다는, 이번 편파 판정 등에서 드러난 중국의 세계 질서 재편 시도에 한국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대중 관계를 중요시해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은 편파 판정 논란에 즉각 반응했다. 선거 전 막판에 ‘반중 쓰나미’ 여론이 일까 신경 쓰는 분위기였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지난해 12월 “청년 대부분은 중국을 싫어한다”고 했을 때 민주당은 “반중 포퓰리즘” “국경을 넘은 망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지난 7일 쇼트트랙 경기가 끝난 심야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편파 판정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8일엔 페이스북에 “한국 선수단의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제소 결정을 적극 지지한다”고 올린 데 이어, 기자들과 만나 “올림픽이 중국 동네 잔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아쉬움이 든다. 중국 당국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세계일보 인터뷰에선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문제에 대해 “불법 영해 침범은 격침해버려야 한다”고도 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도 “동계올림픽이 중국 체육대회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공정한 심판이 중요하다”고 했다. ‘친중’ 딱지를 우려해 후보와 당대표가 동시에 중국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민주당은 편파 판정 논란에 내부적으로 상당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이 20일까지 열리는 만큼, 이번 이슈가 대선 막판까지 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날 이 후보를 비롯한 당 대표와 선대위, 대변인단이 총출동해 비판 입장을 밝힌 이유다. 선대위 관계자는 “실시간으로 온라인 등 여론을 살펴보고, 근거 없는 비방이 올라올 경우 즉각 대응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일로 이 후보가 기존의 중국에 대한 입장까지는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윤 후보는 이날 밤 “동북공정”까지 거론하며 중국 비판에 나섰다. 윤 후보는 이날 오후엔 “한중 관계가 상호 존중에 입각해 이뤄지지 못한 것 아닌가 우려된다”면서도 “대통령 후보가 특정 국가에 대한 반대 감정을 언급할 순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밤엔 페이스북에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스포츠맨십’”이라고 했고, 올림픽 개막식의 한복 논란 등을 거론하며 “문제의 핵심은 대한민국 역사를 중국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란 노래도 함께 올렸다. 이양수 선대위 수석대변인도 문재인 정부를 향해 “지난 5년 친중 정책의 대가가 무엇인지 성찰하기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도 반중 정서를 선거 전면에 내걸기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야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이 후보가 지난 2016년 중국 CCTV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되면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것”이라고 한 발언 등을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뜨리고 있다. 후보나 당 차원이 아닌 지지자들을 통한 온라인 여론전에 나서는 전략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이번 문제에 엄정하게 대처하되 친중·반중 논란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정치권에서 반중 정서를 부추기는 것은 국익을 해하는 일”이라며 “당리당략에 따라 외교적 사안에 반응하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경제·안보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결국 한국 외교 근간은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의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며 “한미 동맹을 우선순위에 두고 이를 협상 레버리지 삼아 중국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