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10일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윤호중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관리형 비대위’로 당장 목전에 닥친 6월 지방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5년 만에 다시 야당이 된 민주당에는 대선 패배 수습,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 설정 등 과제가 쌓여있다.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172석 ‘거대 야당’의 힘으로 당장 국무총리 인준, 정부조직법 처리 등 새 정부 출범에 필수적인 절차에서부터 파행을 초래할 수 있다.
송 대표 등 지도부는 이날 오후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지도부 총 사퇴 입장을 밝혔다. 송 대표는 “투표로 보여주신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반구제기(反求諸己·화살이 적중하지 않았을 때 자기에서 원인을 찾음)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지금 외부의 새로운 인물을 비대위원장으로 선임하려고 하면 오히려 혼란과 분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의견이 개진됐다”며 “최고위는 이러한 의견을 수용해 윤호중 비대위 체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면적인 당 쇄신보다는 단합과 회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원내대표는 차기 전당대회가 예정된 8월까지 비대위를 맡아 6월 지방선거를 지휘하고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 관계 설정 과제를 맡게 됐다. 비대위는 내주 초 중앙위원회 추인을 거쳐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앞서 이재명 후보는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이재명이 부족한 0.7%를 못 채워서 진 것이지 여러분은 지지 않았다”며 “저는 우리 국민들의 위대함을 언제나 믿는다. 지금의 이 선택도 국민들의 집단 지성의 발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해단식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이낙연 전 대표는 “이제부터 민주당의 지혜와 결단을 요구받는 일이 현격히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민주국가에서 여소야대라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는 앞선 선거 과정에서 정권 교체 시 예견되는 여소야대 상황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이 상황 판단을 빠르게 하고 신속하게 집행해야 하는데 소수 국민의힘이 할 수 있겠나”라고 했고, 송 대표도 윤 당선인을 겨냥해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었다. 사실상 발목 잡기를 노골적으로 예고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내 강경파 일각에서는 박빙의 대선 결과에 대한 격앙된 분위기도 포착된다. 열린민주당 출신 최강욱 최고위원은 이날 새벽 개표 방송에서 윤 후보 자택 앞 현장을 연결하자 “저 XX 말을 들어줘야 하느냐”라며 거친 반응을 보였다. 김용민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분노하거나 원망하지 않겠다. 하던 일을 마저 하겠다. 지킬 사람들 지켜내겠다”고 썼다.
다만 민주당은 통상 지지율이 70% 안팎까지 올라가는 정권 초기에 의석수를 앞세운 ‘화력 시위’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게 될 수 있다는 인식도 하고 있다. ‘거대 야당의 발목 잡기’ 프레임에 갇히면 3개월 뒤 열리는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거야 심판론’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방선거는 대선과 비슷한 흐름으로 윤 당선인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대선 패배 요인을 두고 강경파의 전횡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 후보와 가까운 한 의원은 “지난 2년간 민주당 ‘입법 폭주’에 대한 비판 여론도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며 “협치와 국민 통합은 이 후보와 윤 당선인이 모두 공약한 사안인 만큼 최대한 협조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급조한 지방선거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총선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편을 포함한 ‘정치 개혁’ 과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심이다. 송 대표는 이날 해단식에서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개편하지 않으면 국민적 통합이 쉽지 않다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며 “저희가 국민들께 약속한 과제가 민주당에 의해 지속해서 추진됐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