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022년 대선 패배 후 당내 입지가 흔들렸고 사법 리스크까지 더해져 정치 생명이 불확실했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고, 공직선거법 1심에선 의원직을 상실하고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비마다 매번 극적으로 생환해 또다시 원내 제1당의 대선 후보를 거머쥐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0.73%포인트 차이로 졌다. 과거 대선에 패배한 정치인은 은퇴하거나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 후보는 대선이 끝난 뒤 3개월 만에 치러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인천 계양을 지역 출마를 모색했다. 당내에서도 “대장동 수사에 대비한 ‘방탄용’ 국회의원 배지를 달겠다는 거냐”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 후보는 결국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다.
이 후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같은 해 8월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77.77% 득표율로 당선됐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친문(親文)을 중심으로 한 비명(非明) 세력의 견제가 있었다. 실제로 2023년 9월 검찰이 이 후보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민주당 안에서 다수의 반란표가 나오면서 이 후보는 구속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오히려 이 후보의 당내 입지가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이 후보는 작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비명횡사’ 공천을 주도했다. 체포동의안 표결 때 반란표를 던진 것으로 지목된 친문 의원들이 줄줄이 탈락했다. 공천 잡음에도 이 후보는 총선에서 170석을 확보하면서 ‘이재명 일극 체제’를 완성했다.
총선 이후 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이용해 윤석열 정부 주요 인사와 이 후보를 수사한 검사 등에 대해 줄탄핵에 나섰다.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특검법을 연달아 통과시켰고, 노란봉투법과 양곡관리법 등 각계의 우려가 큰 법안을 강행 처리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대한 비판이 컸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3 계엄으로 자멸하며 ‘이재명 대세론’을 만들어줬다.
이 후보는 사법 리스크에서도 벼랑 끝까지 몰렸지만 모든 사건에서 기사회생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 때 대장동 개발의 실무자였던 고(故) 김문기 성남도개공 처장을 “모른다”고 말해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작년 11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지만, 지난 3월 2심은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후보는 작년 11월 위증 교사 사건 1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날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이 후보는 소년공(少年工) 출신으로 두 번이나 대선에 출마하게 됐다. 이 후보는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못 하고 성남 상대원 공단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며 6개 공장을 전전했다.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프레스에 왼쪽 손목이 찍히는 사고를 당했다. 부러진 뼈가 잘못 붙으면서 왼팔이 굽어 장애 판정을 받았고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 후보는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땄고, 1982년 중앙대 법대에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입학했다. 1986년엔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당시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강의에 감명받아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성남에서 변호사로 개업해 시민운동을 하면서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사건을 파헤쳤고,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특수 공무 집행 방해, 공무원 사칭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기에 음주 운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전과 4범’ 꼬리표가 붙었다.
2004년 성남시립병원 설립 실패는 이 후보가 정치권에 입문한 계기가 됐다. 이 후보는 이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부정한 기득권자들이 좌절시킨 시립공공병원의 꿈을 성남시장이 되어서라도 이루려고 시장 출마를 결심했다”고 했다. 이 후보는 2006년 성남시장 선거, 2008년 분당갑 지역 총선에서 연달아 낙선했지만, 2010년 지방선거 때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그는 재선 시장을 거쳐 2018년부터 20대 대선 후보로 뽑히기 전까지 경기도지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