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28일 후보 선출 뒤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이승만·박정희·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그동안 민주당 인사들이 현충원을 찾아도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만 참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후보는 다른 대통령 묘소까지 찾았다. 이 후보는 이날 보수 진영 인사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상임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대선 경선에서 득표율 89.77%의 압도적 지지를 확인한 이 후보가 중도·보수 외연 확장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12·3 계엄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한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도 영입하려고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는 이날 서울 현충원에 안장된 전직 대통령 묘소를 모두 참배한 뒤, 원래 일정에 없던 박태준 포스코 초대 회장의 묘소도 참배했다. 이 후보는 “저도 한때 그랬지만 이미 돌아가신 분들을 두고 정쟁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며 “정치는 현실이고 민생을 개선하는 것이 정치의 가장 큰 몫이기에 가급적 지나간 이야기, 이념이나 진영은 잠깐 곁으로 미뤄두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다 가능하다. 공과가 다 있다고 생각한다”며 “너무 한쪽에 몰입하지 말고 양 측면을 함께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구동존이(求同存異)라는 말도 있다”며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같은 점을 구해 보자는 뜻”이라고 했다. 이 후보는 방명록에 “함께 사는 세상, 국민이 행복한 나라, 국민이 주인공인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꼭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후보는 이날 당 최고위 회의에서도 “지금 나라가 너무 많이 찢어졌다”며 “경쟁이 끝나고 대표 선수가 선발되면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국민을 한길로 이끌어 가는 것이 대통령이 할 일”이라고 했다.
이 후보의 이런 모습은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이 후보는 처음 대선에 도전한 2017년에 경선 예비 후보 신분으로 현충원을 찾았는데, 이때는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는 찾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친일 매국 세력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국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라고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한 듯, 이 후보는 이날 “오늘 저의 이런 행보 때문에 의구심을 갖거나 또 서운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며 “역사적 평가에는 양 극단이 존재하고 저도 마찬가지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 생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제는 다 묻어두자 이런 얘기가 아니라 당장 급한 건 국민 통합이고 색깔 차이를 넘어 국민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희망적 미래, 세계로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윤여준 전 장관 영입에 대해 “윤 전 장관에게 평소 조언을 많이 구한다”며 “우리 선대위를 전체적으로 한번 맡아주십사 부탁드렸는데 다행히 응해 주셨다”고 했다. 이 후보는 경선 직후에도 “최대한 넓게, 친소 관계 구분 없이 실력 중심으로 사람을 쓰겠다”고 했다. 최근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 등 보수 논객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장관은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일 잘하는 분을 모시려고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의 영입도 타진 중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여러 의원이 김 의원의 입장을 듣고 있다”며 “이 후보의 외연 확장에 김 의원 영입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승래 수석 대변인은 “진행된 것은 없다”면서도 “민주당은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겠다고 이미 수차례 말해 왔다”고 했다.
이 후보의 외연 확장 시도에 정치권에서는 “중도·보수 유권자 설득을 위해 총력전을 시작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합 이미지로 정치 보복 가능성이나 한쪽으로 쏠린 이미지를 극복해보려는 것 아니겠냐”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당에선 “배제의 정치로 일관해 놓고 이제 와서 통합을 말한다”고 비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후보가 민주당에서 한 일은 보복과 숙청밖에 없다”고 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반대파를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숙청한 이 후보가 통합을 말하면 국민 누가 믿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