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전경. /뉴스1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백내장 수술을 받았는데도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 금융감독원으로 들어온 분쟁 조정 신청 4400건을 금감원이 시비를 가리지 않고 임의로 종결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쌓여 있는 신청 건수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감사원이 29일 공개한 ‘금융감독원의 백내장 실손보험금 지급 분쟁 조정 업무 처리 관련’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백내장은 한 차례 수술에 700만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고,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백내장 수술 후 자신이 부담한 비용을 보험사에 청구하고 있다.

그런데 보험사가 백내장 수술에 대한 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하면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경우가 늘었다. 이에 따라 금감원에 접수되는 백내장 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 조정 신청도 크게 늘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접수된 신청이 7080건에 달했고, 이는 같은 기간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이었다.

백내장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보험 가입자와 보험사 간에 벌어진 분쟁은 백내장 수술을 하는 것이 적정했는지, 입원 치료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 등이 쟁점인 경우가 대다수로, 의학 전문가의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한 것들이었다.

금감원이 이런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감사원이 확인해 보니, 금감원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전문가 자문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건을 종결 처리해버리고 있었다.

백내장 보험금 분쟁 사건은 2022년 폭증해, 그해 1~10월에만 4067건이 금감원이 접수됐고, 이는 전년도 302건에 비해 약 13.5배로 늘어난 것이었다. 당시 금감원이 처리 중이던 실손보험 분쟁의 절반이 백내장 보험금 분쟁이었다.

그러자 금감원은 2022년 11월 ‘계량 지표를 활용한 백내장 분쟁 일괄 신속 처리 방안’이라는 내부 방침을 만들었다. 이 방침은 ‘환자 눈 수정체의 혼탁 정도가 중증인 경우’ ‘환자가 60세 이상인 경우’ ‘환자의 백내장 수술 전 교정시력이 0.8 미만인 경우’ 등에 한해서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권고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는 그동안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 권고를 받아들여 온 범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금감원이 이 범위에 들어오지 않는 사건의 경우에는 모두 종결 처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각 사건 환자가 실제로 백내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는지를 의학 전문가를 통해 따져보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고, 그 결과로 보험사들은 보험금 지급 부담을 덜었다. 이런 사건 환자들은 따로 노력을 기울여 보험사와 별도로 합의하지 못하면, 소송을 통하지 않고는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아낼 길이 사라져버렸다.

2022년 6월 대법원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백내장 환자에 대해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는 경우, 일괄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인정해 고액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관행을 깨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이에 따라 이듬해부터는 ‘백내장 수술을 받았더라도, 입원할 필요까지 있었는지’가 백내장 보험금 분쟁 사건 대다수의 쟁점이 됐다.

그러자 금감원은 ‘환자가 병원에 6시간 이상 체류했고, 백내장 수술로 출혈, 안압 상승 등 주요 합병증·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된 경우’에 한해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환자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입원 치료가 필요했는지가 명확하지 않아 추가 조사가 필요한 사건들은 또 일률적으로 종결해버렸다.

그 결과, 금감원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접수된 백내장 보험금 분쟁 사건 7080건 가운데 4400건(62.1%)에 대해, 사실 관계 확인이나 의학 전문가 자문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종결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사건을 종결하면서) ‘제3 의료기관에 자문하라고 권고’ ‘주치의 면담을 권고’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실상은 금감원이 직접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 없이 문제 해결을 신청인 등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분쟁 조정 담당 부서의 판단과 결정만으로 사건을 내부 종결해, 금융 소비자 보호의 실효성과 금융 분쟁 조정 제도의 공신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일본뇌염, 유방암 등의 질병에 대한 보험금 분쟁에서는 의사·변호사·교수 등 전문가 조언을 받고 관련 판례와 결정례 분석을 통해 의학적 쟁점에 관한 사실 관계를 확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분쟁 조정 신청인의 주장을 인용할지, 기각할지를 검토해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회부했으며, 금융분쟁조정위원회가 이를 바탕으로 심의·의결을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감사원은 금감원에 백내장 보험금 분쟁 사건에 대해서도 이런 절차를 거치라는 취지로, “금융분쟁조정위원회 회부 대상 선별 기준 마련 등 실손보험금 관련 분쟁 조정의 실효성을 제고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금감원은 감사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백내장 관련 분쟁처럼 단기간에 다수의 분쟁이 집중된 경우, 소비자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분쟁 처리 기준을 마련하고, 이에 대해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심의·의결을 받겠다”고 밝혔다고 감사원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