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시의회는 청사 인근 식당 7곳에 장부를 만들어두고, 의원들이 이곳들에서 아무 때나 공짜 밥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장부에 오른 밥값은 나중에 시의회의 업무추진비로 결제됐다. 의원들이 사적으로 식사한 것인지, 업무상 간담회를 하면서 식사한 것인지, 누구와 식사를 한 것인지는 따지지 않았다. 이렇게 시의회가 주민 세금으로 대신 내준 밥값은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3년여간 1456건, 5000만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107건, 300만원은 의회가 열리지 않는 공휴일에 쓰인 밥값이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의원 7명과 공무원 12명이 울릉도로 2박3일짜리 ‘세미나’를 갔다. 19명 숙박비로 1인당 약 47만원씩 총 888만원이 나왔다. 그런데 공무원은 규정상 1인당 1박에 7만원까지만 숙박비가 지원됐다. 반면 의원들에게 지원되는 숙박비엔 상한이 없었다. 그러자 이들은 공무원들은 1박에 7만원짜리 방에, 의원들은 1박에 51만원짜리 방에 묵은 것으로 꾸몄고, 888만원을 모두 타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청렴도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28개 지방의회의 업무추진비 사용 실태를 점검한 결과,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6개월간 집행된 144억원 가운데 25억원(17.4%)이 부당하게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점검 대상 지방의회 28곳 중 27곳에서 부당 사용이 적발됐다.
23일 권익위에 따르면, 144억원 가운데 식비로 쓰인 금액은 108억원이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최소 18억2000만원(16.9%)이 부당 집행이었다. 정부 훈령에 따르면, 지방의회가 의원들에게 식비를 지급할 수는 있다. 단, 회의나 간담회 같은 공식 행사를 개최하는 경우여야 하고, 행사 방법과 참석 범위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어야 한다. 행사를 정상적으로 개최했다는 증빙 자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18억2000만원어치 식비 1만3740건에 이런 증빙 자료가 없었다.
경기도의회는 ‘의정활동 지원 정담회’라는 행사에 공무원 등 13명이 참석했고, 참치요리 전문점에서 식비 36만6000원을 썼다고 했으나, 권익위가 조사해보니 실제 식사를 한 인원은 7명이었고, 행사가 실제로 열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기 용인시의회는 ‘민원 처리를 위한 주민 간담회’를 이유로 3차례에 걸쳐 특정 한우식당에서 연인원 40명이 약 70만원어치 음식을 먹었다고 했지만, 실제 식사 인원은 3~4명이었다.
28개 지방의회가 쓴 업무추진비 144억원 중 식비를 제외한 36억원 중에서도 6억8000만원(18.9%)이 부당 집행이었다. 강원 원주시의회는 의원이 사적으로 참가한 걷기 대회 참가비 88만5000원을 세금으로 대신 내줬고, 전북 군산시의회도 의원이 사적으로 참가한 마라톤 대회 참가비 67만5000원을 대신 내줬다. 경기 수원시의회는 의원들의 볼링장 이용료 13만2000원을 대신 냈다. 경기 파주시의회는 의원들의 술값 35만원을 대신 내줬다. 의원들이 비용을 청구하며 댄 명목은 ‘안건 회의’였다.
경기 수원시의회는 의원들끼리 반기에 한 번씩 ‘의정 연수’를 가면서 단체복을 사서 나눠 가졌다. 수원시의회 의원 정원은 37명으로, 이들이 모두 연수에 참석했다면 의원 한 명당 162만원을 쓴 것이다. 경기도의회 의원들도 단체복으로 한 벌에 20만원대 패딩을 사서 나눠 가졌다. 서울시의회, 경기 용인시의회, 경북 안동시의회, 강원 원주시의회 등은 의원과 공무원이 함께 간 국내 출장 숙박비를 영수증을 위조하는 등의 방법으로 과다하게 청구했다가 권익위 조사에 적발됐다.
권익위는 이번 점검 대상 지방의회의 예산 집행 전반에서 다수의 규정 위반이 확인됐다며, 해당 기관에 위반 사실을 통보해 관련자들을 징계하고 하고,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항은 감독 기관에 넘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권익위는 지방의회 의원들과 사무처가 평소 지자체 감사 기구의 감사를 받지 않는 등 내부 감시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권익위 이명순 부패방지 담당 부위원장은 “최근 공공기관 종합 청렴도 평가 결과에서도 지방의회의 청렴 수준이 다른 공공기관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권익위는 앞으로 고질적이고 관행적인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