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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인공지능(AI)·반도체·바이오·방위산업 등 분야의 외국인 기술 인력을 한국으로 유치하겠다며 ‘반값 소득세’와 ‘가족 전체 동반 이주 허용’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정부가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외국인정책위원회를 열어 글로벌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수석 엔지니어급 인재를 1000명 이상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톱티어(Top-Tier) 비자’라는 새로운 비자 제도를 도입해 이달 중 시행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톱티어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한국에 사실상 무제한으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톱티어 비자를 받고 1년이 지나면 최장 5년간 체류할 수 있고 다른 직장으로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거주 비자(F-2)로 바꿀 수 있다. 톱티어 비자 외국인은 배우자와 자녀, 부모는 물론 자기가 지정하는 가사 도우미 1인을 한국으로 데려와 함께 살 수 있다. 그러다 국내 거주 기간이 총 3년이 넘으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톱티어 비자 외국인이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에 대해서는 근로소득세도 대폭 낮춰주기로 했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한국인은 세전(稅前) 연봉에서 연말정산을 통해 소득공제를 하고 남은 금액에 대해 6~45%를 근로소득세로 낸다. 외국인 근로자는 조세 특례에 따라 세전 연봉의 최대 19%까지만 근로소득세로 낸다. 하지만 정부는 톱티어 비자를 받고 입국한 외국인에게는 이에 더해 최장 10년간 근로소득세를 절반 더 깎아주기로 했다.

전세 자금 대출과 전세 보증도 각각 5억원까지 제공하기로 했다. 또 자녀가 다니고 싶어 하는 외국인 학교가 있으면 그 학교 정원이 다 찼어도 입학을 받아주고, 은행 계좌 개설, 휴대전화 개통, 주민센터 전입신고 때는 전담 기관 직원이 동행해 안내해주기로 했다. 톱티어 비자 특전은 대학 순위 세계 100위 이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글로벌 500대 기업 3년 이상 근무(전체 경력 8년 이상), 연봉 약 1억4000만원 이상 등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외국인에게 제공된다.

정부가 톱티어 비자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첨단 산업 두뇌 확보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주로 미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여 제조업·조선업·건설업 등 인력이 부족한 분야 노동력 공급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외국인정책위에서 “미국·일본·싱가포르 등 주요국들이 첨단 분야 인재 확보를 위해 과감한 유인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도 혁신을 주도할 해외 우수 인재들이 정착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세계 100대 대학 중 한 곳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외국인에게는 한국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했더라도 일단 입국해 최장 2년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는 ‘D-10-T(구직)’ 비자를 발급해 주기로 했다. 정부는 또 6·25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한 나라의 청년이나, 한국 정부가 경제 협력을 하고 있는 나라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 드림 비자’를 발급하기로 했다. 이 비자를 받고 들어온 외국 청년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준비한 기업 인턴십 등의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하면서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정부는 2028년에 11만6000여 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요양보호사를 외국인으로 충원하는 대책도 내놨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요양보호사 비자(E-7-2)를 신설하고, 국내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이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해 취업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추가해서 정부는 여러 대학을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 대학’으로 지정해 외국인 유학생들을 요양보호사로 길러내기로 했다. 한국으로 인력을 송출하는 협정이 돼 있는 17국에서 우수 인력을 뽑아 한국으로 데려온 뒤, ‘요양보호 전문 연수 과정’을 통해 요양보호사로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가동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