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전경./연합뉴스

충북 청주시 6급 공무원이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6년간 공금 4억9716만원을 빼돌려 가상 화폐 투자 등에 썼다가 감사원에 적발됐다. 청주시는 이 공무원이 시 사업비는 물론 수해 복구 기부금에까지 손을 대는 동안 낌새를 전혀 채지 못했다. 이 공무원의 횡령을 찾아낸 것은 감사원의 지방자치단체 재정 지출에 관한 빅데이터 분석이었다.

11일 감사원에 따르면, 감사원 공공재정·회계감사국은 지난해 4월 지자체의 재정 지출 관련 자료가 자동으로 수집되도록 만들어둔 ‘감사 자료 분석 시스템(BARON)’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을 시작했다. 지난해 6월 감사원은 청주시 공무원 A씨가 올린 재정 집행 문서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A씨와 같은 이름이 예금주인 계좌로 공금 일부가 들어간 것이다. 재정 집행 대상이 A씨와 우연히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추가 확인 결과 공금 수령 계좌 예금주의 주민등록번호는 A씨의 것과 동일했다.

감사원은 곧바로 청주시청 현장 조사에 착수해 A씨를 추궁했고, A씨는 공금 횡령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감사원에 ‘횡령 행각을 끝내줘서 고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청주·나주·경주 등 이름에 ‘주(州)’가 들어가는 지자체들끼리 결성한 ‘전국 동주 도시 교류 협의회’를 비롯해 청주시가 가입한 여러 단체의 자금 관리 업무를 맡고 있었다. A씨가 이런 단체의 자금을 빼돌리기 위해 쓴 수법은 ‘도장 훔쳐 쓰기’였다. A씨는 각 단체의 거래 인감을 도용해, 각 단체 계좌에서 자신의 계좌로 한 번에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5100만원씩 이체했다.

A씨는 시 사업비에도 손을 댔다. 2019년에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 보도연맹 희생자 추모제, 이북도민연합회 망향제 등의 행사에 청주시가 보조금을 주는 업무를 맡아, 관련 유족 단체 계좌로 가야 할 보조금을 한 번에 485만~524만원씩 빼돌렸다. 유족 단체들이 보조금 정산을 해달라며 믿고 맡긴 단체 계좌 통장과 거래 인감을 악용해 자기 계좌로 돈을 빼낸 것이었다.

A씨는 2021년에는 학생 근로 활동에 학생 1명이 참여하지 않은 것을 알고, 이 학생이 정상적으로 사업에 참여한 것처럼 꾸며 인건비 166만원을 자기 계좌로 받았다. 2023년 학생 근로 활동은 아예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지 않아 놓고, 청주시가 학생들 몫으로 낸 고용보험료, 산재보험료 6243만원을 자기 계좌로 빼돌렸다. 2021년 북한이탈주민 지역 협의회 운영비에서 495만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물건을 구입하는 것처럼 지출 품의서를 올려 결재를 받아놓고 실제 물건을 구입하지 않고 돈만 빼돌리는 방식이었다.

감사원은 “A씨가 장기간 거액의 횡령을 할 수 있었던 원인을 점검한 결과, 청주시의 내부 통제 업무 전반이 부실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청주시장 직인을 관리하는 공무원은 평소 직인을 안전 조치 없이 방치해뒀고, A씨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는데도 출금전표에 직인을 찍어가게 허락했다. A씨의 상관들은 A씨가 허위로 올린 지출 품의서의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결재했다. 일부 상관은 자기 업무용 PC의 비밀번호를 A씨를 비롯한 부서원들에게 공유했고, A씨는 자기가 올린 지출 품의서를 상관의 업무용 PC로 몰래 결재할 수 있었다.

청주시 자체 감사 조직은 A씨가 돈을 빼돌리기 위해 만들어 사용한 청주시 명의 계좌를 포착하고서도 해당 계좌가 이미 해지됐다는 이유로 이를 점검하지 않았고, A씨가 자기 명의 계좌로 돈을 보낸 것을 알고서도 이를 자세히 조사하지 않고 ‘증빙 서류 누락’만을 지적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감사원은 “청주시가 내부 점검을 부실하게 수행해, A씨의 횡령 사실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A씨가 횡령 범행을 계속할 여지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A씨는 횡령한 돈을 주택담보대출 상환과 가상 화폐 투자 등에 쓴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A씨는 가상 화폐 투자에서 대부분 손실을 봤고, 횡령한 돈을 메우지 못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A씨에 대한 수사를 수사 기관에 요청했고, A씨는 기소돼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감사원은 청주시에 A씨를 파면하고, 청주시장 직인 관리 업무를 소홀히 한 공무원과 A씨 상관 등 5명에게 징계·주의를 주라고 요구했다.